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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유산이명박 | 2015.12.07 | N0.8

2년 만에 현장 관리 책임자가 되다
인부들의 폭동은 진압되었지만 타이 공사 현장은 적자가 누적되어 갔다. 말단사원인 내 눈에도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그러나 현장 간부들은 이런 사실을 본사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주영 사장이 타이 현장을 방문했다. 마침 정 사장과 단둘이 있을 기회가 찾아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장님, 제가 볼 때 이 공사는 밑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손해가 더 크게 늘어날까 걱정입니다.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정 사장은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야. 이 군이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이익이 남아. 내가 다 보고를 받고 있어.”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반론하지는 않았다. 정 사장이 서울로 돌아간 뒤 차근차근 자료를 수집했다.


예상했던 대로 타이 고속도로 공사는 적자였다. 나는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고 문제점까지 파악하여 현장 경리과장과 관리부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내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보고하자 어느 날 관리부장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이 군, 그 서류 이리 주게. 적자가 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직원들 사기에 문제가 생기니 당분간 비밀로 해두게.”


그러고는 관리부장은 내 보고서를 서울 본사로 보냈다. 정 사장은 곧바로 본사 감사 팀을 대동하고 타이로 달려왔다. 타이 공사가 흑자라 믿었던 정 사장은 누군가 공사대금을 빼돌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공사 현장은 발칵 뒤집혔다. 장부와 서류가 트럭에 실려 방콕으로 보내졌다. 감사 팀이 꼬박 열흘 동안 그것들을 뒤졌지만, 돈을 빼돌린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감사 팀이 적자 원인을 밝히지 못하자 정 사장이 직접 나섰다. 관리부장, 경리과장 그리고 나를 방콕의 한 호텔로 불렀다.


정 사장은 우리 세 사람을 차례로 면담했다. 그런데 먼저 불려갔다 오는 관리부장과 경리과장의 표정이 이상했다.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듯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 차례가 되어 정 사장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 군, 나는 안 해본 공사, 안 당해본 일이 없어. 그런데 이 공사에서 적자가 나다니 이해할 수 없네. 누군가 분명 돈을 빼돌렸어. 나는 이 군을 절대 믿어. 부장과 과장 두 사람 중 누가 돈을 빼돌렸는지 말해보게.”


정 사장이 물었다. 나는 말단 경리사원으로서 내가 아는 선에선 누구도 돈을 빼돌린 사실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정 사장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이 군이 혼자 해먹었나?”


순간 내가 위기에 처했음을 직감했다. 나는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저는 그런 일을 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몇 달 전 제가 사장님께 이 공사에 이익이 남느냐고 여쭌 적이 있습니다. 사장님은 이익이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수시로 보고를 받으신다니 안심했지만 그래도 걱정돼 보고서를 만들어 부장님께 드렸습니다.”


보고서에 기록한 대로 이번 일은 한 개인의 착복이 아닌 공사 수주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해외 공사 경험 부족으로 인한 것이라는 뜻으로 설명했다. 정 사장은 깜짝 놀라며 내게 되물었다.


“그래? 그 보고서를 자네가 작성해 부장에게 보고한 거야?”


경리부장은 내 보고서를 자신이 작성한 것처럼 정 사장에게 보고한 것이었다.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다는 표정으로 정 사장은 내게 다시 물었다.


“부장하고 과장은 자네가 해먹은 거라고 하던데, 자네는 두 사람 다 그렇게 한 일이 없다고 하는군.”


그 순간 조사를 받고 나오던 과장과 부장의 표정이 떠올랐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정 사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가보라고 했다.


정 사장은 조사가 끝난 뒤 서울로 돌아갔다. 곧이어 관리부장과 경리과장은 서울로 송환되어 해임됐다. 그리고 입사한 지 2년도 안 된 나는 대리로 진급해 현장 관리 책임자로 임명됐다. 내가 현대건설에서 초고속으로 승진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부모님의 유산
지금 생각하면 당시 정 사장은 공사의 적자를 파악한 안목도 안목이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정직함을 높이 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직은 내 삶의 큰 자산이었다. 때로는 곧이곧대로 하는 바람에 어려움도 겪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신뢰를 쌓고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같은 태도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지나치게 정직해 고지식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으셨다. 그래서 남보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이문이 적거나 손해를 보는 일이 많았다.


한번은 포목상을 하시는 동네 어르신이 아버지에게 옷감 장사를 해보라고 권하셨다. 우리 형편이 어려운 것을 잘 아시는 분이었다. 물건을 외상으로 대줄 테니 장터에 들고 나가 행상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동네 어르신은 아버지에게 장사 요령까지 알려주셨다. 대자로 옷감을 잴 때 약간씩 겹치게 해서 적게 잡은 뒤, 마지막에 남은 부분을 손님에게 덤으로 주는 것처럼 하라는 것이었다. 약간의 눈속임으로 파는 사람도 밑지지 않고, 사는 사람도 기분 좋게 사가도록 하는 일종의 장사 노하우를 가르쳐준 것이다.


아버지는 옷감 재는 방법을 밤새 연습하셨다. 그러나 시장에 나가서는 한 번도 그 방법을 쓰지 못하셨다. 아버지의 양심이 그러한 눈속임을 용납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


아버지, 어머니가 내게 물질적으로 남겨주신 것은 없다. 그러나 두 분이 내게 물려주신 이러한 삶의 자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당당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두 분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수많은 도전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큰 유산을 물려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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