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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친구가 준 교훈이명박 | 2015.11.25 | N0.3

거지 친구가 준 교훈


내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해방되던 해 초겨울 우리 가족 여덟 명은 일본 시모노세키 항에서 귀국선에 올랐다. 재산이라곤 일본에서 모은 얼마 안 되는 돈과 살림살이가 전부였다. 그러나 쓰시마 섬 앞에서 귀국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그마저도 모두 잃었다. 우리 가족은 빈털터리로 고국 땅을 밟았다.


지독한 가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부모님은 행상과 노점상을 전전하며 열심히 일하셨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그 시절 옆집에 거지 가족이 살았다. 그 가족 중에는 나와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밥때만 되면 꼭 방문을 열어젖히고 보란 듯이 밥을 먹었다.


우리 가족은 멀건 죽을 먹거나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 친구는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옷도 나보다 더 잘 입었다. 나는 늘 다 낡고 해어져 여기저기 기운 옷을 입었지만, 친구의 옷은 헌옷이긴 해도 기운 데 하나 없이 말끔했다. 철없던 어린 시절, 나는 그 집이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잘사는 줄 알았다.


1999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 잠시 가있을 때였다. 하루는 교민들의 초청으로 LA의 젊은 청년들에게 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나고 호텔을 나서는데 누군가가 “니 명박이 아이가?”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타국 땅에서 들리는 고향 말투에 고개를 돌려보니 허름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내가 바로 알아보지 못하자 “옆집에 살던 ○○이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어린 시절 우리 옆집에 살던 거지 친구였다. 내가 강의한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반가움에 그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숙소로 갔다.


그날 우리는 밤새 많은 대화를 나눴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와 옛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날 그 친구가 했던 말 중에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너희 부모는 자식들을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는 못했어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열심히 사셨지. 그러나 우리 부모는 남에게 구걸해서 너희보다 잘 먹이고 입혔어. 어른이 되고 너희 형제는 모두 성공했는데, 우리 형제들은 아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도 어떻게 해서 미국까지 왔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새벽녘에 그 친구를 보낸 뒤 어머니의 가르침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존심이 무척 강하셨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봉사를 하며 사셨다. 덕분에 이웃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나는 장사와 공부에 지친 몸을 이끌고 남의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항상 말씀 하셨다.


“가서 물 한 모금이라도 얻어먹으면 안 된다! 음식을 준다고 받아오지도 말고…….”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우며 항상 배가 고플 때였다. 잔칫집이라도 가면 기름진 음식의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야단맞을까 봐 싸주는 음식마저 뿌리치곤 했다.


당시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나는 어머니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엄한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부자들의 도움에 기대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는 궁핍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가난과 어머니는 내 인생의 큰 스승이었다.


간신히 야간 상고에 진학하다


내가 포항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못 꿀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어머니의 결정에 따라 나는 형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가난한 집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어머니를 도와 장사를 하던 어느 날, 시장에서 중학교 선생님과 마주쳤다. 평소 나를 불량 학생으로 생각하던 선생님이었다. 술지게미를 먹고 등교한 날이면 그 선생님은 “어린놈이 뭘 먹었기에 술 냄새를 풍기느냐”고 혼을 내셨다.


집안 사정을 얘기하고 오해를 풀 수도 있었지만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더 혼나곤 했다.


“너, 명박이 아니냐?”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행상 다니는 나를 본 선생님은 깜짝 놀라 외치셨다. 나는 창피해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충격을 받으셨는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셨다. 나중에 우리집안 사정을 알게 된 선생님이 어머니를 찾아오셨다.


“집안 사정도 모르고 제가 명박이를 오해했습니다. 명박이는 성적도 좋습니다. 사내아이인데 어떻게든 고등학교는 졸업시켜야죠.”


선생님의 말씀에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못한 채 한숨만 내쉬셨다. 선생님도 집안을 둘러보시고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날은 그냥 돌아가셨다. 그러나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며칠 뒤 우리 집을 다시 방문하셨다.


“동지상고에서 야간학부 학생을 모집합니다. 명박이가 낮에는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밤에 학교를 다니면 됩니다.”


“명박이가 번 돈은 다른 데 써야 합니다. 저희는 등록금을 낼 형편이 못 됩니다.”


이날도 선생님은 그냥 돌아가셨다. 그리고 며칠 뒤 또다시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제가 알아보니까 동지상고는 수석을 하는 학생에게는 등록금과 입학금을 면제해준답니다. 명박이가 공부를 잘하니 등록금을 면제받고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어머니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셨다. 덕분에 나는 동지상고 야간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등록금이 면제되는 동안만 다닌다는 조건이었다. 다행히 입학시험뿐 아니라 3년 내내 수석을 해서 등록금을 면제받은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 인생의 큰 은인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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