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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위기 속에서 미래를 본다이명박 | 2015.11.17 | N0.1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 책은 나의 대통령 시절 이야기다. 내가 이끈 정부와 정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사실 중심으로 씌어졌지만 내 삶의 궤적을 따라 내 생각들이 배어 있다.


바닷가 출신의 가난한 고학생이 대통령이 되어 나라 안팎을 뛰어다니며 열심히 일한 이야기다.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를 향해 모두가 함께 달렸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어렵사리 앞줄로 나섰고 세계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게 됐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이 시대 한국인 모두의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3년 2월 24일 오후 4시,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공식 일정이 끝났다. 중국 국가주석 특사 접견에 이어 타이 총리의 예방을 받고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노하우를 타이에서 되살리는 방안을 협의했다. 녹색성장과 물 관리 사업도 계속 협력해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집무실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마음도 홀가분했다. 처음 이 방에 들어섰을 때 휑하니 비어 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동안 넓은 방 구석구석을 국정에 대한 구상과 의지로 채웠었다. 빈 책상에 다시 앉았다. 다음 사람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임 축하 인사와 더불어 격려의 말을 적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더 큰 대한민국과 행복한 국민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직원들과 이웃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청와대를 나섰다. 24일 밤 11시 59분 서울 논현동 사저, 전화벨이 울렸다.


“대통령님, 국가위기관리실장 안광찬, 보고 드립니다. 전후방 특별한 상황은 없습니다.”


“경계를 철저히 하고, 인수인계를 정확히 하기 바랍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국군통수권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인계되었음을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대통령님, 편히 쉬십시오.”


정확히 25일 0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바통을 넘기는 순간이었다. 미등이 켜진 서재는 편안했다. 얼마를 그대로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나 이제 올라가서 자도 되지?”


홀가분했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국민은 멀리 있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가까이 곁에 있었고 모두들 같이 뛰고 있었다. 그들의 한마디 격려가 내겐 가장 큰 힘이었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사무실에서, 길거리 식당에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부러 찾아와 인사하는 시민들이 내겐 큰 위로가 된다. 반가워하는 중소기업인과 전통시장 상인들, 셀카를 들이미는 청소년들이 고맙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나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 국민을 섬겨야 한다. 현안에 빠져 정신없더라도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공허한 논쟁을 일삼기보다는 산적한 문제들을 처리해야 한다. 깨끗한 정치를 넘어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한다.


정치권 밖에서 들어왔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통치가 아닌 경영을 하고자 했다. 우선 선거부터 달라져야 했다. 인신공격성 네거티브를 중단하고 정책 경쟁을 시도했다. 나와 내 생각을 당보다 국민이 먼저 알아주었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일하리라 다짐했다. 일이 희망이고 기도였다. 한정된 시간이다. 무실역행(務實力行)하자. 열심히 일해 국민에게 보답하고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보자. 나와 나의 참모들은 얼리버드(early bird)들이었다. 정말이지 쉬지 않고 뛰었고 신나게 일했다. 다 잘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는 많은 일들을 해냈다.


변화의 물결, 파고가 높아지는 시기였다.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줄은 알았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정책 전환에 따른 마찰음도 컸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한·미 FTA 결사 반대!”


선정적인 보도가 이어졌고 반대자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여기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 참고 설득하기를 거듭했다.


“안전한 쇠고기만 수입합니다.”


“자유무역을 하고 경제 영토를 넓혀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이 걷히고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금쪽같은 시간이 헛되이 흘러갔다. 상처도 입고 아픔도 있었지만 결국 한·미 관계를 복원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는 나의 정책 의지를 관철할 수 있었다.


정작 큰 위기는 바깥으로부터 왔다.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에 유럽발 재정위기가 겹쳤다. 모두들 놀라 허둥대는 가운데 세계경제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위기 극복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대통령이다. 실물경제 속에서 잔뼈가 굵은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 생각했다. 위기를 넘어서면 기회가 있다. 신발끈을 고쳐 매고 고삐를 다잡았다.


파장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않은 규모와 속도로 증폭되어 퍼져 나갔다. 밀려드는 쓰나미 앞에 세계 여러 나라들이 위험에 빠지고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다. 외신은 연일 추락하는 경제지표를 보도하면서 한국 경제가 가장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국제사회에는 보호무역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재정지출을 선제적이고 과감하며 충분하게 확대하자고 긴급 결의했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가 함께 힘을 모아야 했다.


우리도 여야 합의로 사상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했다. 나는 부처 신년 업무 보고를 연말까지 마치고 새해 벽두부터 재정지출을 앞당겨 집행했다. 개인이고 국가고 운명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닫고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 실행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공공 부문에서 생산적 인프라 투자가 그야말로 신속하고 과감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청와대에서는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이어졌고 현장에서는 기업들과 노조들도 협력했다. 결과는 파란불이었다. 온 세계가 마이너스 성장이었을 때, 우리는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0.2라는 숫자가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집채만 한 파도에 이어 산더미 같은 해일이 닥쳤지만, 다행히 국민은 그저 ‘어려운가 보다’하고 지나칠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돌렸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외국 정상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우리 경제가 취약하다고 비판했던 해외 언론들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위기를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한 나라!’


국가 신인도는 올라갔고 한국은 어느새 국제회의의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의제를 정하고 규칙을 논의하는 위치로 격상되어 있었다.


나는 정치자금을 걷지 않았다. 대신 내 재산을 사회에 내놓았다. 샐러리맨 생활을 하면서 평생 아껴 쓰며 모은 돈이었다. 오늘을 있게 해준 많은 분들과 우리 사회에 대한 감사였다. 그리고 가난했던 어머니와의 약속이었다. 이해해준 가족들이 고마웠다.


외롭고 힘든 때가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대통령이기에 좌절할 수 없었다. 귀 기울이고 의논해야 하지만 결코 힘든 내색을 해서는 안 됐다. 불평하고 하소연할 틈도 없었다. 어느 누구를 탓하겠는가?


다수 국민이 나를 믿고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고 길을 열어야 한다. 앞장서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선진화’를 선언하고 출범한 정부다. 예전처럼 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에 새 길을 내야 했다.


다가오는 미래를 헤치고 열어가야 하는 것이다. 한 치도 피할 수 없고, 일각도 미룰 수 없다. 결단하고 시행했다. 그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다. 역사와 국민 앞에서…….


현실이 아무리 급박해도 훗날을 생각해야 한다. 당장 급하지 않은 듯하지만 지금 꼭 해야 하는 일들도 있다. 지금 시행하는 이 정책의 실질적 당사자는 다음 세대다. 우리의 어린이, 미래 한국인들이 살아갈 세상을 내다보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의 국민으로부터 동의를 구해야 한다. 야당을 만나고,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들었다. 지방을 방문하고, 시장 골목도 다녔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었지만 기꺼이 그렇게 했다.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의 용사가 산화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야 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북한은 마구잡이로 도발해왔다. 연평도 포격에 이어 핵실험을 하고 로켓을 쏘아 올렸다. 단호히 제재를 가하고 엄중히 경고했다. 국제사회와도 공조를 강화했다. 하지만 좋은 선택을 하라고 창문은 열어두었다.


대응제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진정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것은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이러한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국민도 지켜보고 있고 국제사회도 함께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북한은 변해야 하고 변할 것이다. 권부는 강고하지만 주민사회에서는 이미 변화의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나는 통일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나는 환경보전과 경제발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생각을 정책으로 실행한 것이 ‘청계천 복원’이고 ‘서울숲’이다. 그것을 진화시킨 것이 ‘4대강 살리기’이고, 지구촌으로 확대시킨 것이 ‘녹색성장’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강과 주변 지역이 생기를 얻고 있다. 물을 확보하고 지구온난화에 대비하는 것은 인류에게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몰라서 반대하고 알면서도 반대하는 이들이 있지만 남벌로 황폐한 산에 나무를 심듯이 그동안 버려두어 썩은 강바닥을 걷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국토 환경은 살려내고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 4대강이 되살아나 맑은 물이 가득 차 흐르는 것을 바라보면서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꾸준한 유지보수가 뒤따라야 한다. ‘지천 살리기’ 사업도 이어져야 한다.


국정의 고비마다 나는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제가 성심으로 국민을 섬기고 열심히 일하게 하소서.”


청와대에서, 백령도와 독도에서.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중국 쓰촨성 지진 현장에서, 북극 그린란드에서 그리고 중동 사막에서도. 나뿐 아니라 시장에서 노점을 하는 할머니까지도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님, 우리 대한민국을 보우하소서.”


이 기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일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 퇴임 후에도 봉사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녹색성장 담론을 국제사회에서 이어가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개발 협력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 나라 안팎에서 내 뜻을 이해하고 협력했던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나아갈 것이다. 인류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미래 전략에 힘을 보태고 싶다.


내게 이 책은 하나의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그에 앞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모처럼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적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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