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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해법이다이명박 | 2018.02.26 | N0.160
36. 선진 일류 국가는 문화 국가

문화가 해법이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선진 일류 국가는 곧 문화 국가입니다. 소득수준만 높은 것이 아니라 경제적 수준에 걸맞은 문화 수준을 가진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2008년 3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나는 우리 정부의 국가 비전인 선진 일류 국가는 곧 문화 국가임을 이야기했다.

짧은 시간 한국은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 부작용은 결코 적지 않았다.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 노사 간의 갈등은 우리 사회를 사분오열시켰다. 세계 최고의 IT 국가인 한국에 대해, 외국인들이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노사분규와 거리 시위였다.

이 같은 부작용은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한국의 브랜드 가치는 경제력의 30퍼센트에 그치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의 수십 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이런 문제가 남북 관계와 맞물리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우리 기업들은 해외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9년 1월 22일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출범했다. 국가브랜드위원회는 범국가적 차원에서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만 해도 국가 브랜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시작부터 많은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국가브랜드위원회는 민간의 창의성과 공무원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출범 1주년 되던 해에 코트라(KOTRA) 리서치는 미·일·독 3국 평균에 비해 30퍼센트 디스카운트되었던 우리의 국가 브랜드가 3.3퍼센트 개선된 걸로 발표했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어윤대, 이배용 위원장이 차례로 맡아 많은 민간 위원들과 함께 국제적으로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내가 취임하며 국가 비전으로 삼은 ‘선진 일류 국가’의 해법이 나는 문화에 있다고 봤다.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의 벽을 허무는 가장 근원적인 해결책은 바로 국민 누구나가 수준 높은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화는 사회 갈등을 완화시키는 역할 이외에도 경제적인 효과도 유발한다. 세계는 문화와 경제가 융합하는 ‘컬처노믹스(culturenomics)’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문화의 개념이 단순히 보고 즐기는 대상에서 해외로 수출되는 ‘문화상품’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스마트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도 콘텐츠산업의 발전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문화는 미래의 먹거리를 위해서도 중요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 언급한 ‘새 정부가 지향하는 선진 일류 국가는 곧 문화 국가’라는 말은 그런 의미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일구어낸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넘어,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는 문화 융성을 통한 선진화라는 의미였다.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짓다

서울시에서는 시립미술관을 비롯하여 역사박물관, 서울대공원 등 문화시설을 운영한다. 2002년,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일요일에 서울대공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휴일을 맞아 서울대공원은 평일보다도 몇 배나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대공원 직원들이 평일보다 휴일에 더 적은 인원이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휴일에는 정직원들은 대부분 쉬고 아르바이트생들이 근무를 했다. 평일보다 사람이 더 몰리는 휴일에 더 많은 사람이 일해야지, 누가 봐도 비효율적인 체계였다. 시립미술관이나 역사박물관도 사정은 비슷했다. 폐장시간이 너무 빨라 직장인들은 평일에 이용을 할 수가 없었다.

문화시설의 공무원들이 일반 기업체와 똑같이 출퇴근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민이면 누구나 문화를 손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의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으로 인해 시민들은 문화생활을 누리는 데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나는 문제를 시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릴 경우 부작용이 예상됐다. 내 임기가 끝나고 차기 시장이 부임하면 관람시간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따라서 나는 담당공무원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기를 원했다.

어느 날, 간부회의가 끝난 후 담당국장에게 이야기했다. “이번에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을 꼭 봤으면 하는데, 낮에는 바빠서 갈 수가 없고, 일을 끝내고 가면 폐장시간을 넘기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걱정 마십시오. 시장님 오시는 시간에 맞춰 문을 열어놓겠습니다.” 예상한 답변이었다.

“서울시장이라고 그렇게 특혜를 받아서야 되겠어요?” 담당국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돌아갔다. 나는 비슷한 문제제기를 이후 세 차례쯤 더 했다. 그제야 내 뜻을 알아차린 담당국장은 내게 결재 서류를 올렸다. “시립미술관과 역사박물관의 평일 개장 시간을 연장해 직장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말 이용객이 많은 서울대공원과 같은 시설에는 직원 근무제도를 바꿔 시민들이 휴일에 이용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때부터 새롭게 정착된 서울시 문화시설의 운영시간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시민들이 퇴근 후나 휴일에 보다 편리하게 문화생활을 즐기게 된 것이다. 비슷한 취지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종로구에 있는 국군 기무사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추진했다. 1995년, 종로구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나는 이 자리에 미술관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 서울대공원 끝자락에 붙어 있었다. 교통이 불편하여 시민들이 찾아가기 어려웠다. 기무사 부지에 미술관을 건설함으로써 문화를 가까이서 즐길 수 있도록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 인사동 그리고 삼청동을 연결하는 문화의 거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서 그 일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서울시장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 2009년 1월 15일, 나는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을 했다. 이날 행사는 문제의 기무사 부지 내 강당에서 열렸다. “기무사 터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조성하겠습니다.” 이날 나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밝혔다. 곧 미술관 건립을 위한 사전작업에 착수했다. 그제야 비로소 국회의원이나 서울시장 시절, 미술관 건립이 왜 그토록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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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웅 2018-02-26 12: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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