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이야기
HOME > 짧고도 긴 역사 > 회고록 이야기
관건은 기업과 정부의 지속적 관심이명박 | 2018.01.24 | N0.157

관건은 기업과 정부의 지속적 관심


이 같은 맞춤형 교육의 성공 이면에는 기업체 임원 출신 교장들의 역할이 컸다. 현재 운영 중인 마이스터고 37개 학교(5개 학교는 개교준비 중) 13개 학교의 교장들은 기업체 임원 출신이다. 이들 임원출신 교장들은 산업체 근무 경력과 인맥을 활용하여 학생 채용 약정 기업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금은 정년퇴직한 르노삼성자동차 부사장 출신 부산자동차고 이승희 전 교장, 삼성전자 전무 출신 대전동아마이스터고 위성욱 교장, LG전자 사장 출신 구미전자공고 최돈호 교장, 풍산금속 공장장 출신 울산마이스터고 장헌정 교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승희 부산자동차고 교장은 르노삼성자동차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기 전 삼성전자에서 20년간 인사 업무를 담당한 베테랑이었다. 이 교장은 부산자동차고 학생들을 보면서, 이 정도 실력의 학생이라면 삼성전자에도 충분히 선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 교장은 삼성전자와 협의한 결과 2010121, 200명 정도의 부산자동차고 1학년생을 미리 채용하고, 2학년 때부터 매년 250만 원씩 장학금을 지급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지금은 250명 규모로 채용 인원이 더 늘었다.


삼성전자가 마이스터고 학생 채용을 선도하자 자연스럽게 현대자동차도 동참했다. 현대자동차는 마이스터고, 전문대, 4년제 대학 모두를 비교 평가한 결과, 마이스터고 학생들을 채용하는 것이 기업에 최선이라 판단했다고 한다20153월 개교 예정인 학교까지 포함해 총 43개 학교가 마이스터고로 전환된다. 20103월 개교한 21개 마이스터고의 1기 졸업생들은 92.3퍼센트 취업률에 89.5퍼센트 정규직 취업률을 보였다. 상당수 학교가 사실상 100퍼센트 취업률을 달성한 결과였다.


마이스터고에 선정되지 못한 600여 개 특성화고에 대한 지원도 확대했다. 특성화고는 과거 실업계 고등학교로 불리던 학교들로, 각 분야에서 특성화된 우수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특성화고라 이름 붙여졌다.


우리 정부는 특성화고에도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모든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100퍼센트 장학금을 지원했다.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많아 국가 장학금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다.


또한 행정안전부는 공무원 채용에서, 기획재정부는 공기업 채용에서 그리고 은행연합회는 은행 채용에서 고졸 채용을 강화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과거 진학 중심으로 운영되던 특성화고들이 취업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퇴임을 며칠 앞둔 201327, 나는 인천전자마이스터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나는 2010년 마이스터고 개교식 때 참석해 졸업식 때도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퇴임을 앞두고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졸업식은 영상 중계를 통해 전국 마이스터고와 함께 진행됐다.


나는 이날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이야기했다나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돈을 벌다가 대학에 갔습니다. 대학도 이태원 시장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다녔으니 완전히 마이스터고 정신에 입각해 학교를 다닌 거예요.” 내 말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이날 나는 퇴임 후에도 자주 찾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 약속대로 앞으로도 종종 학교를 방문하여 격려할 계획이다.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이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협력해주길 기대한다.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자 언론들은 신고졸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평가했다. 무조건 대학부터 가고 보자는 추세가 바뀌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당당한 직업인으로 대우 받고 살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그러나 신고졸시대는 단기적으로 완성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도 정부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청년 실업과 사교육비 문제, 제조업 경쟁력 약화 등 많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11장 문화·과학강국이 살 길이다

35. 삼수 만에 성공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세 번 울지는 않겠다


평창은 2003년 체코, 2007년 과테말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두 차례 실패했다. 2007년 9김진선 강원도지사는 평창의 세 번째 도전을 선언했다그러나 국가 사업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의사 결정이 필요했다.


평창의 세 번째 도전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IOC 역사상 올림픽 유치에 세 번째 도전해서 성공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특히 동계올림픽은 하계올림픽과 달리 서구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개최되어 왔다.


동계올림픽 시설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환경파괴를 피할 수 없었다따라서 IOC는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시설을 이미 갖추고 있는 나라를 선호했다상대적으로 귀족 스포츠가 주류를 이루는 동계올림픽 시설을 갖춘 나라들은 서구 선진국들이 대부분이었다.


국민 정서도 세 번째 도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일부 지역에서는 강원도가 올림픽 유치권을 10년간 독점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그러한 문제들을 고려해 임기 두 번째 해까지 나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마음은 달랐다임기 초부터 IOC 위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면 빠짐없이 만났다. “만일 평창이 세 번째 도전에 나선다면 꼭 지지해달라고 당부했다각국 정상들을 만날 때도 평창 지지를 부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다른 지역이었다면 나 역시 포기했을지 모른다그러나 강원도는 산업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었다그런 강원도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강원도가 발전할 수 있다면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개인적인 경험도 일부 작용했다나는 기업인 시절인 1984년부터 1992년까지 아시아수영연맹 회장을 역임했다또한 1984년에는 세계수영연맹 집행위원을 맡았다세계수영연맹 집행위원은 IOC 위원들과 함께 일을 했다그중에는 IOC 수석부위원장도 있었고동계올림픽 종목의 IOC 위원으로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IOC 위원들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자신감으로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평창 유치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나는 IOC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세계 정상 중 IOC 위원들과 같이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이야기해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가능성이 없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 시기가 점점 다가오자 여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국민들은 평창을 지지하는 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그러나 결정의 시기에 다다르자 주변 사람들과 참모들이 만류했다가능성이 희박합니다괜히 도전했다가 안 되면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평창의 세 번째 도전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판단에서 나온 이야기였다그러나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수만 있다면 한국은 독일이탈리아프랑스일본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동·하계 올림픽월드컵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모두 개최하는 나라가 되는 의미가 있었다우리는 짧은 시간에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했다나는 건국60주년을 맞는 2008년을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했다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바탕으로 이제는 선진화를 추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진화는 단지 소득 수준만 높아진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경제수준에 걸맞은 문화 국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따라서 문화와 스포츠를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이를 위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이미 평창에는 전임 정부 당시 1조원에 달하는 시설투자가 이루어진 상황이었다평창 유치를 포기할 경우 평창 알펜시아’ 등 많은 시설들이 쓸모없이 버려질 가능성이컸다동계올림픽을 유치해 기존의 투자를 보다 가치 있게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


  • facebook
  • twitter
댓글 리스트
  • 이충웅 2018-01-24 09:16:45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