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이야기
HOME > 짧고도 긴 역사 > 회고록 이야기
가시화하는 성과들이명박 | 2017.08.30 | N0.106
가시화하는 성과들

당시 정부 내에서는 한·미 FTA 재협상을 먼저 타결 지은 뒤 한·EU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내 생각은 달랐다. EU 측이 미국보다 먼저 한국과 FTA를 체결하기를 희망하고 있고, 그것이 미국을 자극해 한·미 FTA 재협상 타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판단이 옳았다. 지금 시기에 EU와 FTA 협상을 한다면 후순위로 밀렸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본은 2014년까지도 EU와 FTA를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EU FTA 체결은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든 단초가 됐다고 생각한다.

EU의 GDP는 2010년 기준 16조 3,000억 달러로 미국의 14조 7,000억 달러를 능가한다. 우리의 주요 경쟁국인 미국, 일본, 중국 등보다 앞서 이런 거대 시장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한국은 경제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선진 경제권인 EU와의 교역, 투자, 인적 교류 활성화를 통해 우리의 산업구조를 선진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EU의 우수한 상품이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되고 수입 품목도 다양화됐다.

무엇보다도 한·EU FTA는 경제 외적인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EU는 FTA를 체결함에 있어 단순히 경제적 조건만을 고려하지 않았다. EU는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법치가 확립된 나라와만 FTA를 체결한다는 대전제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EU FTA 체결은 역사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됐다.

한·미 FTA가 발효된 지 2년이 지났다. 그러나 야당과 진보단체들이 그토록 주장하던 한·미 FTA의 부작용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ISD 조항으로 인해 한국이 미국 기업의 소송 천국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빗나갔다. 반대 단체들의 주장과 달리 의료비나 약값은 폭등하지 않았고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

2013년 한 해 동안 세계경기 침체로 우리의 전체 수출량은 2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미국으로의 수출량은 6퍼센트 증가했다. 대미 무역흑자도 68퍼센트 늘어났고, 우려하던 농산물과 축산물의 미국 수입액은 -29퍼센트, -12퍼센트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우리 경제가 미국에 종속되기는커녕, 최근 미 의회는 오히려 미국에 불리한 한·미 FTA 협정을 체결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당시 한·미 FTA 체결에 반대하던 이들은 반성은커녕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어떤 해명도 하지 않는다. 경부고속도로와 인천국제공항 건설, 청계천 복원, 대중교통체계 개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이들이 취했던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우리도 성숙한 선진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EU의 경우 한·EU FTA 타결 직후 몰아닥친 유럽발 재정위기의 여파로 우리의 대유럽 주력 수출 품목인 선박 등의 수출이 급감하면서 무역역조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선박을 제외한 자동차와 엔진부품, 배터리, 합성섬유와 수지 등의 제품은 12~104퍼센트의 수출 신장세를 보였다. FTA의 성과였다. 지금은 유럽 경제가 살아나면서 선박 주문을 비롯해 대유럽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하니 향후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세계를 경제 영토로

무역대국, 그것이 내가 기업인 시절부터 전 세계를 누비며 내린 결론이었다. FTA는 경제 협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교, 안보 등 여러 면에서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한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세계 각국과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한 이면에는 그러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 EU 외에도 중국, 인도, 아세안, 호주, 캐나다 등 수많은 나라들과 FTA를 추진하거나 타결했다. 일본과도 협상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중국과의 FTA 협상 개시는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한·중 FTA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2012년 1월 내가 중국을 국빈 방문하면서부터였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과 나는 한·중 FTA의 조속한 체결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했다.

후진타오도 언급했지만 한·중 FTA는 단순한 경제 관계를 넘어 우리 안보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후진타오와의 정상회담 이후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는 신속하게 마무리됐다. 2012년 5월 2일, 한·중 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하고 꾸준히 협상 절차를 밟은 결과, 현 정부 들어 값진 결실을 맺게 됐다.

세계적인 경제대국이자 첨단기술과 투자 재원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도 중요한 FTA 대상 국가 중 하나다. 한·일 양국은 2003년 10월 FTA 협상을 개시했으나 이견으로 협상이 중단된 상태였다. 

2008년 4월 대통령 취임 후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한·일 FTA 협상 재개에 합의했다. 이후 2012년 6월까지 아홉 차례의 실무 협의를 거쳤으나 아쉽게도 농수산물개방 수준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양국의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2009년 10월 한·일·중 정상회의 합의에 따라 한·중·일 FTA 산·학·관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는 2011년 12월 16일 종료되었으며, 이 결과를 바탕으로 2012년 5월 한·중·일 FTA 협상개시를 위한 준비 작업에 즉시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세 차례의 실무 협의 끝에 2012년 11월 20일 한·중·일 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열 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아세안과 2009년 5월과 9월 서비스무역협정과 투자협정을 각각 발효하면서 한국은 세계 3대 경제권인 미국, EU, 아세안과 FTA를 체결한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됐다.

그 밖에도 내 임기 중 페루, 인도와의 FTA가 발효되었으며, 터키, 콜롬비아와는 협상과 비준이 완료되어 발효를 남겨둔 상태였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와는 사실상 합의를 끝내고 서명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과도 FTA 추진을 개시하거나 준비에 들어갔다.

이 같은 노력으로 한국은 국제사회의 FTA 허브로 부상했다. GDP 기준으로 전 세계 61퍼센트가 우리의 경제 영토가 됐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경제 영토를 갖게 된 것이다. FTA는 두 차례의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는 주춧돌이 됐다.

  • facebook
  • twitter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