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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 민주화를 권하다이명박 | 2017.08.18 | N0.101
미얀마에 민주화를 권하다

2009년 6월 2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떼인 세인 미얀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협력에 대한 논의를 마친 후 나는 떼인 세인에게 말했다.

“양국 간에 직접 관계된 일은 아니지만, 한 가지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다.”

떼인 세인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많은 국가들이 미얀마의 민주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얀마 정부가 민주화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주주의를 더욱 정착시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나라에 각자의 사정과 나름대로의 형편이 있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데 있어서 이 문제를 꼭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1989년 이전까지 ‘버마’로 불렸던 미얀마는 한때 우리보다 더 잘살던 나라였다. 그러나 독재의 길을 걷고 인권을 탄압하면서 미얀마는 국제사회에서 고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3년부터 미국, EU를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경제 제재를 실시하면서 미얀마 경제는 북한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특히 미얀마가 북한과 무기 거래를 한다는 의혹이 국제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나는 미얀마가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고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끊는다면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2009년 6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의 만남은 큰 의미가 있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떼인 세인이 참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국가들로부터 회의석상에서 미얀마의 민주화에 대해 꼭 말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가 다자간 정상회의에서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미얀마 양자 정상회담에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민주화 문제를 비롯한 대통령의 말씀을 잘 들었고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과 저는 대통령께서 미얀마를 꼭 방문해주시기를 고대합니다.”

떼인 세인은 내게 초청 의사를 밝혔다. 한국 정상이 마지막으로 미얀마를 방문한 것은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당시 미얀마의 영웅 아웅산 묘소에서 북한의 폭탄 테러가 발생해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17명의 우리 고위 관료들이 사망했다. 이른바 ‘아웅산 테러’ 사건이다.

나는 미얀마를 방문해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비롯해 다양한 문제를 보다 심도 깊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얀마가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미얀마를 방문하는 일은 시기상조일 수 있었다.



북한과의 무기 거래 중단 약속

기회는 얼마 안 있어 찾아왔다. 2011년 3월 미얀마는 신헌법에 따라 민선 정부가 출범했다. 2009년 제주도를 방문했던 떼인 세인은 미얀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떼인 세인 대통령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에서 개혁개방정책을 취함과 동시에, 민주화와 인권 문제에 있어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2012년 4월 재보궐 선거가 합법적이고 평화적으로 실시되고 아웅산 수치 등 야권 인사들이 의회에 진출함에 따라, 서방국가들도 본격적으로 미얀마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웅산 테러 사건 이후 처음으로 한국 정상의 미얀마 방문이 추진되면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우려가 제기됐다. 떼인 세인의 개혁개방정책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지만, 미얀마는 여전히 북한과 군사 협력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정상의 방문은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었다.

특히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은 북한군이 현재 미얀마에 주둔하고 있고, 한국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200여 명이 추가로 파견됐다는 정보가 있다며 위험을 경고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떼인세인의 진심 어린 초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2012년 5월 14일,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29년 만에 나는 미얀마를 국빈 방문했다. 미얀마 정부는 우리 측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가운데 철통 같은 보안과 안전을 유지하는 데 성의를 다했다.

이날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의 대통령궁에서 떼인 세인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얀마 측이 정상회담에 제1부통령을 비롯하여 북한과 가까운 인사들은 모두 배제시킨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나에 대한 배려였다. 인사가 끝난 후 떼인 세인은 말했다.

“이 대통령과 저는 유사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는 것, 그런데 대통령께서 저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셨습니다. 대통령의 가족이 전쟁을 겪은 점과 형 학비 때문에 진학 기회를 놓칠 뻔했다는 점도 저와 비슷합니다. 타이 고속도로를 건설하시며 강도들과 대결하신 것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대통령께서 말레이시아의 페낭대교를 건설하셨는데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습니다.”

떼인 세인은 이외에도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 과거에 대해 나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미국에서 출간된 영문 자서전 《The Uncharted Path》(《신화는 없다》의 영어 번역판)를 읽은 것이었다. 더불어 그는 자국어로 번역된 내 자서전을 미얀마의 모든 공무원들과 학생들의 필독서로 선정할 예정이라 했다.

2009년 제주도에서 떼인 세인을 만났을 때 나는 그를 다소 경직되게 대했다. 이번 만남에서 그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떼인세인은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난 20년간 미얀마는 국제사회의 많은 제재를 받으면서도 북한과 어느 정도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대량살상무기를 구입하거나 군사적으로 협력하지 않는다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떼인 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솔직한 대화는 우리가 서로 신뢰하게 되고 우리 사이를 강하게 만드는 기반인 것 같습니다.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 기술이 미얀마로 흘러들어와 협력을 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 믿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재래식 무기는 북한과 미얀마가 거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미얀마가 서방국가들로부터 제재를 받아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북한과의 재래식 무기 거래도 유엔 안보리 규정 위반입니다. 지난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런 점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나는 떼인 세인에게 당부했다.

“저는 전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베트남이 새로운 친구를 만나 발전하듯이 북한도 새로운 시대를 열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얀마는 대통령님의 훌륭한 리더십으로 새로운 친구들과 사귀며 새로운 미얀마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얀마가 새로운 시대를 열 듯 북한도 변해야 합니다. 북한은 미얀마를 배워야 하고, 베트남을 배워야 하며, 중국의 개방정책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께서 북한에 그런 권유를 하는 것이 북한을 도와주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의 진심 어린 제안에 대해 떼인 세인이 대답했다.

“솔직한 말씀과 제안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과거에는 러시아와 함께 10메가와트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지금은 그 프로젝트를 중단했습니다. 왜냐하면 국제사회로부터 의심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20년간 서방으로부터 많은 제재가 있었기 때문에 국방을 위해 북한과 관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북한과 어떤 협력도 없습니다. 우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제1718, 1874호를 엄격히 준수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세워졌기 때문에 앞으로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모든 국가들도 투명하게 대할 것입니다.”

“새로운 친구일 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 서로 도움이 되는 친구가되기 위해 미얀마에 왔습니다. 미얀마가 필요로 하는 기술 분야에 대해 이제는 한국이 협력하겠습니다.”

나는 떼인 세인에게 이렇게 확답했다. 이후 미얀마 방문을 우려했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미얀마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정보가 잘못된 것임을 알렸다.



아웅산 수치 여사와의 만남

다음 날 15일, 숙소인 세도나 호텔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났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미얀마 독립의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자 민주화운동 지도자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10년까지 미얀마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연금 처분을 받았으나 떼인 세인이 취임하면서 가택연금에서 풀려났다.

과거에는 외국 국빈이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집을 찾아가 면담하는 것이 관례였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 정상들이 아웅산 수치 여사자택의 발코니에서 찍은 사진은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비쳐졌다.

내가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미얀마 정부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내가 묵는 호텔로 초청해 면담을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새로운 민선정부가 민주화 노선을 걸으며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을 해제한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나는 미얀마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하던 차에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연락이 왔다. 내 숙소를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나는 세도나 호텔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날 만남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와 미얀마의 민주화와 인권 상황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뜻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난 후 북한의 테러로 우리 고위 관료들이 희생당한 아웅산 묘지를 참배했다. 내 참배가 유족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예정에 없었지만 ‘아웅산 테러’라는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아웅산 묘지를 찾았다.

마침 <조선일보>가 현지에 위령탑을 세우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좋은 계획이라 생각해 미얀마 정부에 이해를 구하고 승인을 얻었다.

이후 2012년 10월 떼인 세인이 방한했고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많은 협의가 진척됐다. 20년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던 미얀마가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서 활발하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길을 고수하는 북한의 현실이 더욱 비교되어 보였다.

미얀마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이루어진 첫 국빈 방문은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거뒀고, 미국을 위시한 여러 우방 국가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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