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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북방 개척의 꿈이명박 | 2017.06.21 | N0.95
7장 외교의 새 지평을 열다

20. 러시아와 북방 개척의 꿈

옛 소련과의 인연을 다시 잇다

2008년 9월 28일, 나는 3박 4일 일정으로 러시아를 공식 방문했다. 방문 첫날은 동포 간담회 등을 갖고 29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한·러 정상회담을 가졌다.

메드베데프는 매우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정치적 동지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메드베데프는 푸틴과 달리 전후 세대로서 민주주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러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적인 전문가와 정상을 초청해 세계정책포럼을 주최하기도 했다. 나도 2010년 ‘현대국가의 민주주의와 국가발전’을 주제로 야로슬라블에서 개최된 세계정책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 바 있다.

취임 첫해에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역대 대통령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임기 첫해에 4강 외교의 기틀을 잡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개인적으로도 러시아 방문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동시베리아 사할린-하바롭스크 지역의 석유·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한반도에 공급하는 사업을 구상한 바 있습니다. 기업가 시절이었던 1990년에 구소련과 서명한 계약서를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에서 메드베데프는 내 이야기를 경청하며 관심을 보였다. 돌이켜보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었다. 기업가 시절이었던 1990년 6월, 나는 구소련의 야쿠티아공화국을 방문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현대건설 회장 시절 북방 개척의 일환이었다.

야쿠티아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곧바로 날아가면 세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인구는 100만 명도 되지 않았지만 국토 면적은 중국의 3분의 1이나 됐다. 물론 대부분 얼어붙은 시베리아의 동토였다. 그러나 야쿠티아는 가스, 석유, 석탄, 다이아몬드, 금광, 철광석 등 세계적인 매장량을 지닌 자원의 보고였다.

풍부한 자원 중 무엇보다도 내 관심을 끈 것은 가스였다. 야쿠티아에는 60억 톤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었다. 이는 한국이 50년 이상 쓸 수 있는 양이었다. 그동안 수송로와 기후 문제로 많은 나라의 정부와 기업들이 발길을 돌린 곳이다. 유럽 국가들에겐 경제성이 없고 악조건인 이곳이 우리에겐 거꾸로 매력적이었다. 야쿠티아에서 생산된 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여온다면 에너지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개발 계획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금융 문제로 이견이 발생해 협상이 몇 번이나 결렬됐다. 그러나 끈질긴 노력 끝에 막바지에 이르러 타협을 이끌어냈다. 우리는 곧바로 모스크바로 날아가 연방정부와 협의를 마치고 서명식을 가졌다.

이후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구소련의 정치 상황이 급변하면서 이 사업은 실현되지 못했다. 메드베데프에게 이야기한 ‘1990년 구소련과 서명한 계약서’란 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북한 경유 가스관 사업, 러시아가 설득하기로

나는 메드베데프와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현재 사할린-하바롭스크 간 가스관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스관을 설치하는 계획이 마련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400킬로미터만 연결하면 한국에 가스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동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북한을 거쳐 한국에 공급하자는 제안이었다. 20년 전 기업인으로서 꿈꿨던 일이었다. 러시아 방문에 내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소회가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물론 성사만 된다면 한국으로서도 큰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지금 철도가 하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북한을 경유하여 한국까지 연결이 가능합니다. 가스관은 철로를 따라 묻으면 됩니다. 이는 북한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러시아가 나서서 북한을 설득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메드베데프가 내 이야기에 공감을 표했다.

“가스나 석유를 북한을 경유하여 한국에 수출하는 것은 매우 관심 있는 사업입니다. 이미 러시아는 북한과 철도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한국도 이 사업에 참여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철도 사업이 잘 추진되면 가스관 사업도 잘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어려운 문제는 북한의 불확실성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북한 정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북한 정세에 대해 묻는 것은 다소 의외라 할 수 있었다. 중국과 함께 러시아는 과거에 북한과 돈독한 동맹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북한에 대해 갖고있던 생각을 메드베데프에게 이야기했다.

“북한은 알기 힘든 나라입니다. 최근 북한이 대외적으로 강경 노선을 취하는 것은 대외적 문제라기보다는 북한 내부를 단속하기 위한 조치 같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어려운 점이 있다면 주변국에 더 강경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당사국들이 자주 만나 협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러시아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겠습니다.”

메드베데프의 답변에 나도 호응했다.

“앞으로 북한과 관련된 문제도 신속히 러시아와 협의할 수 있는, 그러한 한·러 관계로 발전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러시아와 동북아시아 문제, 아시아 문제, 세계 평화와 공동 번영, 기후변화 문제 등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협력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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