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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공조 흔드는 일본 우경화이명박 | 2017.06.14 | N0.92
한·미·일 공조 흔드는 일본 우경화

위안부 문제 해결이 9부 능선을 넘었다. 그러나 노다 내각은 정치적으로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있었고, 아세안 정상회의 직전인 2012년 11월 16일, 중의원 해산 결정이 내려지면서 위안부 관련협의는 무산되고 말았다. 다음 달인 12월 16일 실시된 총선거에서  국 민주당은 크게 패했고, 자민당이 집권하면서 아베 신조 총리가 등장하게 된다.

장기간의 경기 침체 속에서 일본 정치권은 점차 우경화되어 갔다. 국민들에게 쉽사리 경제회복의 희망을 약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주의적 포퓰리즘이 득세한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한·일 관계뿐 아니라 동아시아 정세 차원에서도 우려할 만한 일이었다. 한·미·일 공조체제의 기반이 흔들릴 수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에도 경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2012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렸다. 당초 오바마가 참석하기로 했으나 대통령 선거 캠페인 관계로 클린턴 국무부 장관이 대신 참석했다. 나는 클린턴과 만나 이야기했다.

“한·미·일 3국이 앞으로 협력해나가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군국주의가 다시 살아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의 극우파가 점점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일본 자체를 위해서도 그렇고 한·미 양국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일본의 극우 세력은 글로벌한 마인드가 없습니다. 그로 인해 한·미·일 협력 관계에 지장이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내 말을 듣고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일본에 어떤 메시지나 신호를 주어 그러한 세력을 통제하고 억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후일 다시 만난 클린턴은 내 이야기에 다시 한 번 공감을 표했다.


대통령이 독도 땅을 처음 밟다

“우리나라 땅인데 역대 대통령이 한 번도 못 갔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그래서 내가 다녀오겠다고 하는 거예요.”

2012년 8월 6일, 청와대에서 관계자들과 독도 방문과 관련하여 회의를 가졌다. 나는 취임 전부터 임기 중 독도를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2011년 8월에는 구체적인 독도 방문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방문 예정일에 기상이 악화되면서 계획을 미루어야 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독도 땅을 밟지 못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독도를 못 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의 방문으로 독도가 한·일 간의 분쟁 지역으로 부각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 영토에 대통령께서 당연히 가실 수는 있지만, 일본 측이 크게 반발할 것이므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회의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독도가 국제 분쟁 지역으로 부각되어 국제 재판에 넘겨질 경우, 우리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같은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강제관할권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한 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해양법 관련 분쟁에서 강제관할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만일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유엔 안보리가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도록 결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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