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가 그렇게 큰 회사가 될지 그때 누가 알았겠어! 허참~"
다스 실소유 문제가 나오면 MB가 늘상 하는 말이다. 다스는 현대자동차에 자동차 시트를 납품하는 업체로, 1985년부터 설립 작업을 시작해 1987년 법인설립을 마쳤다. 다스 설립 작업이 시작된 1985년은 현대자동차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1976년부터 생산한 '포니'로 명맥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출시된 지 10년이 지나 수명이 다해가고 있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포니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로 '엑셀'을 개발함과 동시에, 후일 '소나타'와 '그랜저'로 이어지는 중형세단 생산의 밑그림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는 부품 국산화 작업도 착수했다. 미쯔비시 공업사와 기술협력을 통해 생산된 포니의 부품은 대부분 일본기업으로부터 조달받고 있었다. 일본에서 수입된 부품을 가지고 조립만 해서 판매하는 구조로는 기업성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품업체를 확보하는 일은 원활치 않았다. 국내에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전무했다. 수명이 다해가는 포니에 기대 명맥을 유지하는 현대자동차를 믿고, 막대한 자본을 들여 경험도 없는 분야에 뛰어들 사람을 찾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현대자동차 부품업체가 되기 위해 수많은 기업들이 줄을 섰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현대자동차가 사람들을 만나 부품업체가 되어 달라고 설득하고 다니던 시기였다. 돈과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아가며 부품업체를 설립할 수 있었다.
필자의 친구 중에도 당시 현대자동차의 부품업체를 설립해 지금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1984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사업거리를 찾고 있던 중, 현대자동차가 부품업체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대자동차를 무작정 찾아가 부품업체를 만들고 싶다고 하여, 1986년 1월 '동우에이치에스티' 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지금도 현대·기아차 등에 납품을 하며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다.
▲ 검찰은 다스 전 사장 김성우의 거짓 진술을 근거로 다스 실소유주를 MB로 결론냈다.ⓒ뉴데일리DB
현대자동차는 당시 그룹 임직원들에게도 현대자동차 부품업체 설립을 권장했다. 지금이야 현대그룹 임원이 현대자동차 부품업체를 설립해 운영한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그때는 오히려 부품업체를 설립하면 회사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받던 시절이었다.
당시 현대자동차 사장이었던 이양섭도 경주에 자신의 이름으로 '명신산업'과 '엠에스오토텍'이라는 부품업체를 설립해 현대자동차에 납품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스 역시 이런 과정에서 설립됐다. 현대그룹 협력업체를 운영하며 현대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MB의 큰형 이상은과, 현대건설에서 근무하다 퇴사해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던 MB의 처남 김재정이, 현대자동차의 부품업체 모집 소식을 듣고 다스 설립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다스가 그렇게 큰 회사가 될 지 누가 알았겠냐’는 MB의 말은 당시의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다.
당시 MB는 현대건설·현대중공업을 비롯해 10개 현대 계열사의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었다. 현대건설은 1970년대부터 중동에 진출해 막대한 실적을 올리고 있었고, 현대중공업 역시 해외 선박건설을 수주해 큰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 당시 그런 MB의 눈에는 다스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 수출조차 못하던 현대자동차도 대단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오랜 기간 판사와 변호사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접해봤다. 그 경험을 통해 진실을 말하는 사람과 거짓을 말하는 사람을 구분할 능력이 어느 정도 생겼다고 자부한다.
진실을 말할 때는 본인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 말이 객관적인 상황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MB의 말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짓은 아무리 치밀하게 만들어내더라도 객관적인 상황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다스 전 사장 김성우의 진술이다. 검찰은 김성우의 진술을 근거로 다스 설립과정을 다음과 같이 공소장에 썼다.
▲ 다스 설립과정과 관련된 검찰의 공소장 내용 중 일부.
공소장 내용을 요약하면 ▲현대자동차 정세영 회장이 MB의 공로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부품업체 설립을 제안했는데, ▲MB는 회사에서 문제를 삼을까 우려돼 처남 김재정 명의로 차명회사 다스를 설립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검찰의 공소장 내용은 당시의 객관적 상황과 전혀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다스 설립이 정세영 회장의 ‘보상’이라는 말이 당시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당시는 현대자동차가 부품업체를 할 사람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던 시기다. 그런 상황에서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부품업체 설립을 제안한다는 것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또한 MB가 회사에서 문제를 삼을까 우려돼 차명으로 다스를 설립했다는 말도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전혀 타당하지 않다. 이 역시 앞서 이야기했지만 당시 현대그룹에서는 임직원들이 부품업체를 설립하면 회사에 대한 기여로 평가될 때였다. 현대자동차 사장이었던 이양섭의 케이스가 그 예다.
즉 김성우가 30년 전의 과거 일에 대해 거짓말을 지어내는 과정에서, 당시 상황을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지금의 상황에 맞추다보니, 이 같이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다스 실소유 문제는 2007년 대선에서 불거졌다. MB가 유력한 대권후보로 부각되자, 상대진영에서는 MB의 도덕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네거티브 거리'를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이 이슈화 되면서 다스 실소유 논란이 시작됐다.
대선 과정에서 의혹과 논란은 부풀려졌고, 결국 2007년 검찰과 2008년 특검이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검찰과 특검은 수사 결과 주가조작의 진범은 김경준이며, 도곡동 땅과 다스의 주인은 MB가 아닌 다스의 주주들이라는 결론을 냈다. 이후에도 몇몇 의혹은 제기됐지만 논란은 종결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적폐청산이란 명목으로 전임 정권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이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2008년 특검 당시 다스 경리 여직원이 다스 자금 12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발각됐는데, 그 여직원이 여전히 다스에 재직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120억원 횡령은 여직원이 아닌 MB가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여직원을 퇴사시키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요지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2017년 12월 7일 참여연대가 이상은 다스 회장과 성명불상의 실소유주를 검찰에 고발했다. 같은 달 26일 검찰은 수사팀을 출범하고 다스 수사를 공식화 했다. 수사 결과 검찰은 120억원 횡령은 여직원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일부 언론의 의혹제기는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별건 수사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다스 실소유 문제도 다시 다뤄졌다.
검찰과 사법부는 이번 재판에서 2008년 특검수사와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다스의 실소유주는 MB가 아니다"라는 특검의 판단을 김명수 사법부가 뒤집은 것이다. 문제는 김명수 사법부가 특검 수사를 뒤엎은 이유를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검은 다스의 설립자금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를 금융자료 등 객관적 증거를 통해 규명해 결론을 내렸지만, 이번 재판에서 사법부는 객관적 증거는 철저히 무시한 채 관련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판결을 내렸다.
다스가 MB 것이라는 사법부의 판단 근거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판단이 왜 잘못됐는지, 관련자들이 왜 허위진술을 하게 됐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