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동 땅이 현대건설 땅과 딱 붙어 있어요. 현대체육관도 옆에 있어서 회사 임직원들이 드나들고 그랬지. 내가 회사 몰래 차명으로 땅을 사려고 했다면 압구정동 같은 데 사지, 왜 거기다 샀겠어요? 그것도 형님과 처남 명의로 말이야… 회사에 소문나고 의심받을 게 뻔한 데 말이지.”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이 나올 때마다 MB가 하는 말이다. 도곡동 땅은 MB가 현대건설 회장으로 재직하던 1985년, MB의 큰형 이상은과 처남 김재정이 매입한 땅이다. 총 654평(2162㎡) 규모로, 이 땅은 MB의 말처럼 현대건설 소유의 땅과 붙어 있었다.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은 땅의 일부가 현대건설로부터 헐값에 매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총 654평의 도곡동 땅의 매입가는 15억6000만원인데, 이 중 90평 정도가 현대건설로부터 시세보다 저렴한 약 1억원 정도에 매입됐다는 것이다.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상대 진영은 ‘MB가 현대건설 회장으로 있을 때 헐값매매가 이루어졌다’는 이유를 들어,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는 MB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같은 의혹은 MB 캠프에 의해 곧 해명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상은·김재정 소유의 땅과 현대건설 소유의 땅은 서로 맞붙어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양측의 땅 중 일부를 가로지르는 도로 부지를 발표하면서, 양측 모두에게 쓸모없는 자투리 땅이 생기게 됐다.
양측은 서로 쓸모없어진 자투리 땅을 교환하기로 합의했고, 그 과정에서 이상은·김재정은 현대건설에 차액을 지급한 것이었다. 즉, 이상은·김재정은 현대건설로부터 90평의 땅을 헐값에 매입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가격으로 자투리 땅을 맞바꾸는 과정에서 차액을 지급한 것이었다.
▲ 정부의 도로부지 발표로 양측 모두 자투리땅(오른쪽 그림 연두색 부분)이 생기면서, 이를 맞바꾸는 과정에서 차액을 이상은 등이 현대건설에 지급한 것으로 헐값거래가 아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MB 캠프에서 강남구청 도시계획 자료를 통해 입증했음에도 상대 진영의 의혹 제기는 계속됐다. 주로 나온 얘기는 포스코건설 직원의 주장이었다.
도곡동 땅은 1995년 포스코건설에 265억원에 매각됐다. 그런데 당시 포스코건설 직원 중 몇 명이 거래 당시 윗사람으로부터 “이 땅은 MB 것이기 때문에 비싸게 사줘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상대 진영에서는 이 같은 주장을 근거로 도곡동 땅이 MB 것이라고 몰아갔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런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말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도곡동 땅이 매각됐던 1995년은 MB가 정주영 회장과 결별한 뒤 정치권에 입문해 비례대표 초선의원을 지내던 시절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포스코건설이 비례대표 초선의원의 땅을 시세보다 비싸게 사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카더라'성 의혹이 무차별적으로 제기됐다. 이처럼 상대 진영에서 MB를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로 몰고 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수많은 개미투자자의 돈을 횡령한 BBK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이 MB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MB와 BBK 주가조작 사건을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MB는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결국 상대 진영은 대선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도곡동 땅 매각대금 중 약 20억원이 다스 자본금으로 납입됐고, 다스가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다. 따라서 도곡동 땅 주인이 다스 주인이 되고, 다스 주인이 BBK 주인으로 귀결된다는 논리다. 도곡동 땅 주인을 MB로 몰고 간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일단 이 논리에는 중대한 허점이 있다. 다스가 BBK에 투자한 190억원은 BBK 자본금에 투자한 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BBK는 투자자문회사로 해외 펀드를 운영하는 회사였다. 다스는 삼성생명 등 20여 회사와 함께 BBK가 운영하는 해외 펀드에 투자한 것이다.
다스가 BBK 운영 펀드에 투자했다고 해서 BBK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상대 진영에서는 펀드 투자를 자본금 투자로 교묘하게 왜곡하면서 선동했다. 그래야 MB에서 도곡동 땅으로, 다스로, BBK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 논란은 2007년 대선정국 내내 증폭됐다. 결국 이 문제는 검찰 수사에 이어 2008년 특검까지 가게 됐다. 특검은 자금 흐름을 추적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도곡동 땅 매각대금이 BBK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 BBK 주가조작과 관련돼 그동안 제기됐던 수많은 의혹이 모두 사실이 아님이 판명된 것이다.
특검은 도곡동 땅 매입자금도 김재정·이상은 두 사람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도곡동 땅은 MB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도곡동 땅이 MB 것이 아니라면, 다스도 MB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도곡동 땅 매각대금 일부가 다스 자본금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 정호영 전 BBK 특별검사는 2018년 1월 14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스 부실수사 의혹'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또한 특검은 김재정·이상은 두 사람이 공동 명의로 도곡동 땅을 매입한 경위도 밝혀냈다.
김재정은 현대건설에 근무하다 1982년 퇴사했다. 이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세진개발의 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현대건설로부터 공사를 따내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당시 김재정은 빌라사업이 수익이 좋다고 판단해 땅을 물색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현대건설 관재부 이OO 부장으로부터 도곡동 땅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땅 주인인 전OO 씨가 현대건설에 매각하려고 했지만, 현대건설이 필요없다고 거절한 땅이었다. 김재정이 빌라사업을 위해 땅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이OO 부장은 이 땅을 김재정에게 소개했다.
이상은 역시 고려전선 고문으로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현대건설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돈지간인 김재정과 급격히 친해졌다. 두 사람은 자주 술자리를 가지며 서로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가 됐다.
김재정은 도곡동 땅을 소개받은 후 어느 날 술자리에서 이상은에게 그 땅을 함께 사자고 제안했다. 당시 이상은은 자동차부품회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부품회사는 설립하는 데 긴 시간이 소요돼 자금여력이 있는 상황이었다.
도곡동 땅에 투자하면 2년 안에 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김재정의 말을 믿고, 이상은은 투자를 결정하게 됐다. 김재정·이상은은 그렇게 도곡동 땅을 공동 명의로 매입한 후 현대건설과 짜투리 땅을 교환해 총 654평의 도곡동 땅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특검은 김재정의 도곡동 땅 매입자금은 현대건설 공사 수주대금에서 나왔고, 이상은의 매입자금은 본인 소유의 젖소농장을 처분해 마련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처럼 2008년 특검에서 도곡동 땅의 매입 경위 및 자금 출처가 모두 밝혀졌고, 그 땅의 주인이 김재정과 이상은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번 MB 재판에서도 2008년 특검 수사 결과를 뒤엎을 만한 어떤 객관적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의 추측성 진술과 재판부의 추론을 통해, 재판부는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MB라고 판단했다. 어떤 근거로 이런 판단을 내렸으며, 그 판단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