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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에 대한 중국의 속마음김태효 | 2016.09.24 | N0.162


"중국의 묵시적 지지가 없이는 김정은이가 결코 저렇게 할 수 없을 겁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한 어느 탈북자는 지난 9일 단행한 북한의 5차 핵실험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력투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넌지시 반길지 모른다는 분석은 그간의 통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고위 당국자들은 일관되고도 분명한 어조로 북한의 핵 개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해 왔다. 아울러 북한 핵·미사일 실험이나 대남 도발이 발생할 때마다 남과 북 쌍방이 냉정을 지키고 자제하여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먼저 위협을 가해온 쪽도 나쁘지만 여기에 대응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는 논리라면, 북한은 언제 어디라도 보복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제2의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감행해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6자회담에 나왔던 북한은 2008년 이후부터는 핵 포기는 불가하니 핵 국가로서 미국과 군축 회담을 갖겠다는 태도로 돌아섰다. 1993년 이후 올해 3월까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7건 나왔지만 북한 정권이 핵 카드를 쥐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북·중 경제 관계가 북한 정권의 생명 줄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단둥(丹東)의 지하 파이프라인을 통해 매년 원유 50만t을 북한에 공급하고, 북한의 지하자원을 수입하며, 자국 내 은행을 통한 북한의 계좌 거래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북한 정권의 전략 물자 확보 루트를 열어주었다. 6자회담의 실패는 다른 여러 요인도 있지만 주최국인 중국이 회담 목표인 북핵 저지에 팔을 걷어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이 새롭게 알려지고 이듬해 1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자 미국과 중국은 북한에 3자회담에 나오라고 촉구했다. '절대로' 응하지 않겠다던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4월 23일 회담이 열린 것은 중국이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대북 송유관을 며칠 동안 잠갔기 때문이다. 한·미·일 3국의 대북 식량 지원이 줄어들었던 1996과 1997년 중국의 대북 연간 식량 지원은 평소 수준(30만~40만t)을 훨씬 웃도는 88만t과 114만t을 기록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대북 식량 지원이 급증하자 중국은 이에 맞춰 대북 식량 공급을 줄였다. 중국의 이러한 행동은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사태만은 막되, 누가 하든 최소한의 대북 식량 지원이 이루어지면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기존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호를 뛰어넘는 더욱 강력한 대북 조치를 주문하고 있지만 '인도주의' 차원의 대북 지원은 별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중국의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핵심 당국자들은 북핵에 정말로 반대하지만 자칫 북한이 와해돼 한국에 흡수통일될까 봐 염려하는 것일까. 아니면 북한의 핵 카드 그 자체가 중국의 대외 관계에 쓸모 있다고 보는 것일까. 북핵은 한국의 안보를 볼모 삼아 미·일의 동북아 외교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중국의 이해관계와 맥이 닿는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중국이 찬동하는 미·북 평화협정 체결은 주한 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 논의로 옮아가는 징검다리의 포석이다. 친구가 되어 평화 문서에 서명하는 마당에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적대 관계를 거두는 가시적 조치가 먼저 나와야 핵 포기를 검토하겠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낮은 단계이든 높은 단계이든 연방제 논의를 꺼낼 것이 분명한데, 남과 북의 입법기관 대표들이 각기 동수로 모여 연방통일국가의 새로운 청사진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사드(THAAD) 배치 반대를 위한 백악관 청원 서명 운동에 국회의원 30여 명이 나서는 판국에 알 듯 모를 듯 모호한 연방 사회주의 통일국가가 한반도에 출현하는 거짓말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에 통일을 지지한다고 했지 어떠한 통일이라고 말한 적이 없으니, 이러한 방식의 남북통일은 중국이 볼진대 미국과 일본을 전략적으로 견제해 나가는 최적의 지렛대가 될 것이다.


안보는 미국이 지켜줘야 하는데 경제도 중요하니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외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소 한가롭게 들리는 것은 언제 풍전등화(風前燈火) 처지에 빠질지 모르는 대한민국의 처지가 딱하기 때문일 것이다. 냉철한 대중(對中) 정책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집안싸움에 몰입해 있는 국내 정치가 더 급한 개혁 대상 같다.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23/20160923031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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