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
7월 8일 한·미 정부는 2014년 이래 현안이었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주한미군 배치 결정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대외적으로는 한·중 관계의 급격한 냉각, 국내적으로는 배치 예정지역의 반발과 국론분열까지 이어졌다. 그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청·협의·결정이 없다"는 3무(無) 원칙을 견지해 왔으나, 금년 들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무수단미사일 시험발사를 계기로 배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은 핵능력 강화와 함께 중거리미사일의 고각도 발사를 통해 한국 전역의 군사시설과 주요 항만·공항 시설을 위협하고 있다. 사드는 이와 같은 높아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주한미군과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 무기로 그 배치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2조에 근거한 조치다. 주한미군이 현재 보유 중인 PAC-3미사일은 요격고도가 40㎞에 불과하기 때문에 150㎞까지 요격 가능한 사드를 통해 중층방어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한반도에 무력분쟁상황이 발생할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제공권, 본토 미군의 한반도 전개, 물자보급 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 조치다. 따라서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의 목적과 합리적 군사 필요에 부합하며 한국이 주권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
한편 중국은 사드 배치가 북한이 아닌 자국의 전략핵을 겨냥한 조치라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배치 결정에 대해 정부뿐만 아니라 관영언론을 통해서도 강하게 비난하면서, 한류교류 중단, 각종 회의 취소 등의 보복성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반대는 군사적 측면에서 근거가 희박하다.
첫째, 요격고도가 150㎞에 불과한 사드는 이보다 훨씬 높은 고도에서 운용되며 한반도 상공을 지나지 않는 중국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국 핵 억지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둘째, `요격용` 사드 레이더의 탐지범위는 북한에 국한되며, 미국은 동북아에서 다른 탐지자산으로 이미 탐지능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사드 배치로 중국의 미사일 운용이 제약되는 요소는 거의 없다. 셋째, 한국이 KAMD와 킬체인을 통해 미·일 미사일방어시스템과 분리된 독자적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바로 중국을 배려한 것이다. 아울러 한국과 미국은 사드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양자 또는 한·미·중 3자 협의를 제안하였으나 중국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중국의 반발 뒤에는 다른 동기가 있어 보인다. 우선 중국은 사드 배치가 장차 한국이 미·일 미사일방어망에 편입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둘째, 미국의 아시아재균형 정책을 `중국 포위`로 우려하는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를 미국의 아시아 포위망에서 약한 연결고리라고 보는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재료로 보았을 수 있다. 셋째, 사드 반대를 강조해 온 시진핑 주석을 포함해 중국 지도부는 7월 12일자 남중국해 중재판결의 불리한 결과와 사드 배치가 맞물려 내년 시진핑 2기 출범 준비에 미칠 파장을 의식했을 것이다. 넷째, 1월 북한 핵실험 이후 한·중 간의 인식·기대 격차의 확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중국으로서는 한국이 이렇게 빨리 사드 배치를 결정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사드 문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살펴보자. 첫째, 사드 배치가 고도화된 북한핵의 생존적 위협에 대응하는 데 불가피하다는 점을 국내에서 조기에 공론화했어야 한다. 둘째, 중국에도 다양한 전략대화를 통해 우리 의도가 명확히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걸맞은 진정한 전략대화가 이루어지도록 내실화에 힘써야 한다. 셋째,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시의성이다. 너무 늦거나 빠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북핵 관련 대북제재 시행의 관점에서 결정 발표 시점이 적절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넷째, 한·중 관계는 지난 사반세기 상호 이해 관계의 토대 위에서 착실히 발전돼 왔다. 따라서 중국의 보복 조치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므로, 의연하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 다섯째, 동북아 세력 전환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도록 적극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상황 장악력에 한계가 있지만, 능동적으로 미·중 관계의 안정화와 평화적 동북아질서를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동북아·글로벌 지각판이 전환기 속에 맞부딪치는 단층대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외교사안을 겹눈으로 보아야 하는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외교는 정치·경제와 달리 검증이 어렵고 후유증이 나타날 때는 이미 늦다. 단순명료함의 유혹을 떨치고 매우 정치하고 복합적인 외교를 구사해야 한다. 이념이 아닌 국익, 허례가 아닌 실용의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615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