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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와 사이비 전문가이종화 | 2016.08.29 | N0.152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정책이 동원되었지만 아직도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득분배 악화와 저출산·고령화 같은 구조적 문제도 심각하다. 경제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는 경제학의 위기이고 경제 전문가들의 위기다.

경제 전문가들은 곳곳에서 대접을 받는다. 경제부처, 중앙은행, 연구기관 등 경제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헌법에는 대통령에게 경제정책을 조언하는 국민경제자문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언론에 가끔 대선후보들의 경제 과외교사였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정치·사회·과학 과외교사는 별로 없는 것을 보면 경제 전문가들이 여러모로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가 인기를 누리는 비결이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옳은 처방을 내놓아서가 아니라 권력자들이 원하는 답을 잘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많다. 경제학에는 자연과학과 달리 정해진 법칙이 없는 경우가 많고 정책 처방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정부 지출을 늘리면 경기 부양이 어느 정도 될지 다양한 이론이 있다. 정부 지출의 내용과 가계의 여건에 따라 정책 효과가 많이 달라진다. 이자율 인하, 법인세 인상, 재벌 규제 등의 정책도 사전에 정확히 효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일부 경제 전문가는 정치인의 입맛에 맞춰 특정 이념의 경제이론만 뽑아서 결과가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제시한다. 정부 정책이나 재벌을 옹호하는 주장을 하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사외이사가 되거나, 한 가지 처방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거침없이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 중에는 ‘겉은 같아 보이지만 실제는 아닌 사이비(似而非)’가 많다. 공자(孔子)는 “사이비들은 꼬집어 비난할 구석이 없으며 언뜻 보기에는 청렴결백한 군자와 같으나, 실인즉 오직 세속에 빌붙어서 사람들을 감복하게 하고, 칭찬을 받으며, 자신도 만족한 삶을 누리는 것뿐 결코 성인의 도를 행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고 했다. 사이비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학의 정론(正論)을 종종 왜곡하고 과장한다. 약국에서 파는 감기약에는 부작용을 조심하고 처방대로 복용하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그러나 사이비들이 파는 만병통치약에는 경고문이 없다.

밤낮으로 연구하는 우수한 경제학자들이 대학에 많지만 현실 경제엔 관심이 적다. 정교한 이론이나 외국 자료로 분석한 논문을 외국 학술지에 내는 것이 평가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자료를 이용한 정책 연구는 우수한 국제 학술지에 내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연구에 필요한 원자료를 공공기관에서 얻기도 어렵다. 국책연구기관들이 한국 경제를 많이 연구하지만 예산을 지원하는 정부 부처나 경제인문사회연구원의 입김에서 벗어나 중립적이고 장기적인 연구를 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경제학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경제학자들이 치과의사만큼만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불확실성의 시대』로 유명한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경제학은 경제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수단으로는 매우 쓸모가 있다”고 했다.

비록 경제학자들이 예측을 자주 틀리고 경제위기에 유효한 처방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경제학은 아직도 유용하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경제학의 큰 아이디어들은 여전히 현실 진단에 매우 유용하다고 했다. 기업과 국가의 전략적 의사결정, 정보의 비대칭성,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설명하는 이론 등 여섯 가지를 예로 들었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으로는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으면서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과 같은 반열에 올라 있다. 노벨상이 경제학에 가당치 않게 높은 권위를 부여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아직은 정교한 과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의 경제학이 현실 문제 해결에 좀 더 유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문가 집단 스스로의 자성이 필요하다. 많은 학회가 있지만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는 아직 만들지 못했다. 우수한 젊은 경제학자들이 먼저 이론과 전문 실력을 쌓고 나서 한국의 현실 경제 문제에 관한 좋은 연구를 해 정책 수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신진과 중견 학자의 평가 방법을 다르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국가 연구비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전문가를 모으고 학제 간 연구를 할 세계적 수준의 민간연구소도 필요하다.

단지 경제 분야뿐만이 아니다. 정치·외교·안보·인문·과학에서도 미래의 한국을 키워 나갈 사이비가 아닌 진짜 전문가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너무 지연, 학연, 인간관계로 얽매여 있어 사이비가 판을 친다. 실력과 열정을 갖추고 사회에 헌신할 진짜 전문가들을 키우고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20514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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