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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번영의 독일을 만든 정치지도자들김황식 | 2016.07.25 | N0.147

김황식 전 국무총리


1952년 봄 소련의 스탈린은 분단된 독일을 통일시켜 중립국으로 만들어 독일 땅에서 모든 외국 군대를 철수시키자고 제안을 합니다. 소련이 서독의 재무장과 서방 측 군사동맹에의 가입을 견제하고 중립화된 독일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야당인 사민당은 물론 여당 안에서도 통일 독일을 열망한 나머지 상당한 호응을 보일 정도로 많은 독일 국민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콘라트 아데나워 수상은 독일의 장래를 위하여 독일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서방 세계의 일원으로 남아야 하다는 신념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한편, 소련에 대하여는 독일의 중립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명백히 했습니다. 또 필요하다면 유엔의 관리하에 자유로운 총선거를 실시하여 의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제정하자고 역제안하여 소련을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는 비전과 신념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조국을 번영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1969년 중도좌파 사민당 대표로서 처음 집권한 빌리 브란트 수상은 동서 간 냉전을 완화하고 교류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동방정책을 시행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폴란드와의 관계 개선 및 국경선 획정 문제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도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었고 폴란드는 참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종전 후 폴란드와 독일 간의 국경선은 오데르나이세 강으로 정해졌습니다. 그 결과로 독일은 전쟁 전 독일 영토의 4분의 1을 빼앗겼습니다. 독일 국민들에게 그 땅은 언젠가 회복해야 할 땅, 특히 그곳에서 추방된 독일인에게는 돌아갈 고향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브란트는 독일이 영토 회복을 고집하는 한 독일의 통일, 유럽의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현재의 국경선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란트의 생각은 대다수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념을 갖고 국민을 상대로 설득하는 노력을 계속합니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하여 현재의 국경선을 존중할 것임을 밝히고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 꿇고 참배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브란트 수상의 무릎 꿇기(Kniefall)입니다.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은 온 세계로 전송되었습니다. 그해 타임지는 브란트 수상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고 다음해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브란트 수상의 무릎 꿇기와 이를 담은 사진은 반성하는 독일의 모습을 세계인에게 각인시키고 동방정책에 대한 국내의 반대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동방정책은 다음 우파정부에서도 계승 추진되어 마침내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이듬해 10월에는 통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1998년 집권한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2002년 다시 집권하자 2003~2005년 `아젠다 2010`과 `하르츠 4`라는 포괄적 노동사회 개혁을 통해 독일 경쟁력 회복을 도모하였습니다. 당시 독일은 통일의 후유증을 겪으며 높은 실업률과 저성장 등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슈뢰더 총리는 개혁에 나섰는데, 그 골자는 노동시장 유연화(종업원 해고요건 완화), 실업급여 개편(지급기간 단축 및 금액 축소), 연금 수령연령 상향 조정(65세→67세), 세제개혁(부가세 인상, 소득세 및 법인세 인하 등) 등이었습니다.


슈뢰더 총리는 이 개혁정책으로 사민당 지지자들이 대거 이탈할 것을 알면서도 국가의 장래를 위해 선거 패배의 불이익 위험을 감내합니다. 그는 선거에 패배하였지만, 그 정책은 다음 정부에서도 계승되어 독일은 오늘날 `유럽의 성장 엔진`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독일 정치지도자들이 보여준 위와 같은 사례는 국민의 여론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을 설득하고 당당하게 이끌고 가는 모습입니다. 국익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포퓰리즘에 매달리는 우리 정치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내년 대선에서 우리도 그런 비전, 신념과 용기를 가진 정치인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53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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