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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우리들의 共和國 이 운다 김상협 | 2016.07.21 | N0.146

김상협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 헌법 제1장 제1조에 천명된 이 구절을 그들도, 우리들도 알고 있다. 학교에서 배웠고 신문과 방송,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도 수없이 접했다. 이것이 국가와 국민이 맺은 가장 기본적 약속이라는 믿음을 그들은 초월한다. 이는 당위적 선언일 뿐 실제로는 그들만의 공화국, 그들만의 권력과 이익이 우선한다.


그들은 도처에 있다. 그들만의 성채를 짓고 폐쇄적 이익을 확대 재생산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가 모여 있다는 법조계의 민낯을 보라. 리그에서 현역으로 뛸 때는 공화국이 부여한 지위, 이른바 공직의 힘과 명분으로 내밀한 관계망을 구축하고 리그에서 나오면 `전관`의 모자를 쓰고 이익을 취한다. 일반인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수십, 수백억 원의 돈이 손쉽게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지만 당연시 여긴다. 심지어 현역에서도 그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1조는 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치부하자면 속은 편해지겠지만 다른 곳을 둘러봐도 세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관가에서 요직을 맡은 이들은 노후 걱정을 하지 않는다. 로펌이나 대기업 혹은 자신이 속한 리그가 만들어낸 협회 같은 곳에서 자신들의 공적 경력을 사적 이익으로 치환해주는 경로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1% 리그에 속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자신의 월급과 자리를 만들어준 국민을 개나 돼지로 여기는 공직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들과 상대하는 기업도 난형난제다. 국민의 혈세로 살려놓은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이들은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데 도사급 실력을 보여준다.


노조에도 귀족이 득세한다. 같은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에 비해 4~5배 임금이 높은 정규직 노조는 동업자에 대한 양보 대신 더 많은 급여와 자식들 일자리 세습까지 요구한다.


정점은 역시 정치다. 리그에 속했다는 이유로 100여 개의 특권을 보유한 그들 중 일부는 이마저도 모자란지 `진실한 사람인가 아닌가, 누구와 친한 사람인가 아닌가`로 리그를 다시 나누는 `독존`의 정치를 일삼고 있다. 그들은 사실 내 집 앞 혐오시설은 안 되고, 내 가족만 잘되면 되고, 대기오염은 상관없이 폭스바겐을 사는 우리들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골병은 역시 서민들이 겪는다. 상위 1% 소득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과 영국에 이어 3위가 되었고 청년 고용률은 OECD 최저 수준, 노인 빈곤율은 최고 수준이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더 큰 문제는 `신분제적 현상`에 있다고 진단한다. "불평등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은 조선 말기가 연상될 정도로 신분이 고착화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김경희 성신여대 교수는 `재(再)봉건화`까지 우려한다. "특권층의 독존이 계속된다면 공동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공화국의 위기가 온다"는 지적이다. 한국인의 상향이동에 대한 의식을 조사한 결과(고려대 이왕원·김문조 연구팀)는 이를 뒷받침한다. 자식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부모세대보다 높아질 것으로 응답한 경우는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줄고 부모가 올라가던 사다리가 사라져가는 세대에서 흙수저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란 얘기다. 한국경영연구원이 매일경제와 함께 한국자본주의를 구출할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최근 정년퇴임 고별강연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에 패한 독일이 전후 경제에서 영국을 앞지른 것은 전쟁과 더불어 특권층과 기득권이 사라졌기에 제로 베이스로 경제에 매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 연구가 있다. 한강의 기적과 지금의 위기도 이런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 흥망이 이해집단에 좌우될 수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일제로부터,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힘겹게 세운 대한민국,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여기까지 왔지만 어느덧 그 근본을 다시 생각해 볼 위기에 처해 있다면 기우일까. 공동체 위에 군림하는 파편화된 특권, 공익을 지배하는 사적 이익 추구 속에서 우리들의 공화국이 울고 있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520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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