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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EU 탈퇴가 던지는 도전이종화 | 2016.06.27 | N0.140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했다. 유권자의 72%가 참여하고 52%가 찬성한 단 한 번의 국민투표로 한때 세계를 지배한 대영제국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다. 설마 했던 ‘브렉시트’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서 후폭풍이 거세다. 유럽의 정치와 경제가 혼란과 불확실의 터널로 들어갔다.


브렉시트는 유럽에서 낮아진 영국의 위상과 밀려드는 이민자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불만을 반영한다. 유럽 통합과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의 혜택에 대해서도 회의가 많았다.


지난 50년 동안 무역과 금융 개방을 통해 국가 간에 경제 교류가 빠르게 늘었다. 경제활동의 범위가 국가 단위를 넘어서 지구 전체로 확대됐다. 정보통신과 운송 기술의 발달로 ‘국경 없는 세계’가 만들어졌다. 정치·사회·문화적 교류도 늘고 사람도 쉽게 국경을 넘어 정착했다.


개방과 세계화는 전 세계에 많은 경제적 이득을 가져왔다.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 발전에는 적극적인 대외 개방이 많은 기여를 했다. 값싼 원료와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면서 제조업을 육성했다. 넓은 세계에서 경쟁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신기술을 발전시켰다. 대외의존도가 높아져 외부 충격에 민감해지고 해외 단기자본의 급작스러운 유출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개방적 세계 경제질서로부터 받은 혜택이 더 많다.
 

.많은 국가가 경제 통합과 세계화를 제도화하는 노력을 했다.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관세를 철폐했다. 투자, 금융거래, 노동 이동도 자유롭게 했다. 인접 국가와의 경제통합은 정치·군사적 마찰을 줄여 평화유지에도 도움이 됐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 시작해 67년 유럽공동체(EC), 93년 유럽연합(EU)으로 유럽 통합을 발전시켰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도 역내무역 자유화를 넘어 자본과 숙련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는 아세안경제공동체를 올해 출범시켰다.


그러나 세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무엇보다 세계화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소외 계층의 불만이 크다. 선진국의 저기술·저숙련 노동자들은 외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팽배하다. 미국의 경우 고졸 남성의 실질임금은 지난 35년간 11% 하락했고 계층 간 소득 격차가 커졌다.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들은 저소득과 이민자에 대한 불만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지지하고 있다.


국수주의 성향도 반(反)세계화를 부추긴다. 통합과 세계화는 여러 국가들이 공유하는 가치를 추구하고 국제 합의를 우선한다. 국가의 주권과 정체성이 외부 국가들에 의해 훼손되기 때문에 불만이 발생한다. 유럽에서는 EU의 지나친 간섭, 공동 재원의 부담 비율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중동 난민의 수용 대책에서도 대립이 심했다.


학계에서도 세계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과도한 개방과 세계화가 경제 불평등과 정치·사회의 불안정을 초래한다는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동안 세계화에 앞장서 왔던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학자들도 최근에는 전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이 계속 확대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세계화, 특히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경제 불안정과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 침체, 난민 문제, 테러의 위협으로 고민하는 유럽은 당분간 통합보다 분열로 갈 가능성이 높다. 많은 유럽인이 유럽공동체보다는 자기가 속한 국가의 주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업과 소득 분배가 계속 악화되면 세계화로 혜택을 적게 보는 국가들과 소외 계층에서 반이민·반세계화의 물결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한국은 세계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국가 중 하나다.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반세계화와 국수주의에 대해 경계하고 대비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 보고서에 의하면 G20 국가들은 지난 6개월간 2008년 이후 가장 많은 보호무역조치들을 도입했다. 미국이 한국의 환율 정책을 비판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려는 것도 좋지 않은 소식이다. 아시아에서 영토 분쟁과 주도권을 둘러싼 대립이 심해지고 있는 것도 우려할 일이다.


당장은 브렉시트가 우리 수출과 금융·외환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과도한 불안 심리를 막는 대책이 필요하다. 나아가 반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통상 외교의 역량을 높이고 우리가 앞장서서 아시아와 글로벌 무대에서 새로운 경제 협력과 세계화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내수를 확대하고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외부 충격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줄여가야 한다. 우리 내부에서도 폐쇄적인 고립주의, 국수주의 세력이 커지지 않도록 사회 갈등과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20223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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