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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잔혹사김대기 | 2016.06.26 | N0.139

김대기 KDI정책대학원 초빙교수


1970년대 스웨덴은 자타가 공인하는 제조업 강국이었다. 그러나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세계경제가 불황에 빠지자 기간산업이던 조선업과 철강업부터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조선업은 당시 20만t 이상 대형 유조선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늘어난 과잉시설과 임금상승으로 경쟁력이 취약해진 상태에서 선박수주가 폭락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이라는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철강 역시 과잉시설과 세계적인 수요 감퇴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기간산업이 몰락 조짐을 보이자 노동조합은 강력한 대책을 요구했고, 실업을 우려한 의회는 여야 할 것 없이 세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경영파탄 조선사에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영화하고, 향후 수주가 회복될 것이라는 막연한 전망하에 정부가 유조선을 직접 발주하면서 생산과 고용을 유지시켰다.


그러나 고임금으로 이미 경쟁력이 떨어진 스웨덴이 떠오르는 일본을 이길 수 없었다. 수주는 갈수록 끊겼고 결국 국영화된 조선공장은 모두 폐쇄되었다. 정부가 발주한 유조선들은 한 번 써보지도 못한 채 고철덩어리로 매각되고 말았다. 그리고 스웨덴의 조선산업은 세계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철강산업 부진 역시 정치문제로 비화되었다. 그러나 조선업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갔다. 수요촉진이나 생명연장이 아닌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나아갔다. 대기업 3개를 1개의 회사로 통합하면서 공장 폐쇄와 대규모 해고를 단행했다. 경영합리화를 통해 뼈를 깎는 비용 절감을 했다. 그 결과 10년 뒤에는 흑자경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스웨덴은 조선산업 구제 실패를 통해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사양산업에 공적자금을 넣고 고용유지 해봐야 결국 인공호흡에 불과하다." 그래서 2009년 금융위기 시 자동차산업이 부도 상황까지 몰렸어도 아무런 구제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노동조합과 야당이 정부의 무능함을 격렬히 비판했지만 보수정부는 과거 실패 사례를 들며 거부하였다. 결국 스웨덴의 상징 볼보와 사브는 중국과 네덜란드에 매각되었다. 사양산업은 조기 퇴출시키고 남는 노동력은 생산성이 높은 산업에 투입한다는 기본철학을 확고히 지키면서 스웨덴은 지금도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세상은 참 무심하다. 스웨덴 조선업을 위시해서 유럽, 미국의 제조업을 무너뜨린 일본 역시 세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1990년대 들어 꺾이기 시작한다. 엔화가 2배 절상되어 수출경쟁력이 약화된 데다 텃밭인 조선, 전자, 철강 부문 등에서 한국 같은 신흥국이 매섭게 추격한 결과이다. 여기에 인구절벽까지 겹치면서 침체가 가중되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은 혹독한 구조개혁보다는 금리 인하와 재정 확대를 통해 수요를 키우는 정책을 선택했다. 그 결과 경제 회복은커녕 빚만 엄청 늘어났다.


세월은 또 흘러 이번에는 우리 차례가 된 듯하다. 그동안 성장을 견인했던 제조업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세월이 우리만 비켜가 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러기에는 우리 잘못이 너무 많다. 노동개혁, 고령화 같은 구조적 문제는 지지부진한 채 반기업 정서는 계속 확산되다 보니 경쟁력이 약화되었다. 어느덧 일본, 미국보다도 생산성이 뒤처지게 되었으니 중국과 같은 신흥국을 이기기에는 더욱 역부족이다.


먼저 조선산업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잔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무도 메스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더구나 검찰수사와 국회 청문회까지 받아야 하니 공무원이나 은행 관계자들은 더욱 소극적이 된다. 그런 가운데 한국은행은 금리를 인하했고 정치권은 대규모 추경을 편성할 기세이다. 구조조정보다 가계와 국가부채만 잔뜩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세계는 지금 트럼프 등장, 브렉시트 등 과거에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시절이 올지 모른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457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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