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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신공항 어디서부터 잘못됐나천영우 | 2016.06.17 | N0.137

김해공항 확장 어렵다?… 공군기지 이전 못한다?  
잘못된 假定에서 출발한 영남권 신공항 선정 논란… TK-PK 분열과 상처 남을 듯 
국토부와 업계에 좋을지 몰라도 막대한 예산낭비, 환경파괴 초래… 양식 있는 시민들 나서야 한다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발표를 앞두고 대구경북과 부산 간의 대결과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점입가경이다. 경제적, 기술적 합리성과 건전한 상식은 설 땅을 잃고 혹세무민(惑世誣民) 정치적 포퓰리즘과 지역이기주의가 난무한다. 밀양과 가덕도 가운데 어디로 선정되건 영남권 분열의 상처와 후유증을 치유하기 어렵게 됐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발단은 ‘신공항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잘못된 두 가지의 가정(假定)을 설정한 데서 시작된다. 김해공항은 더 이상 확장이 어렵다는 것과, 김해공항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공군기지를 옮길 수 없다는 가정이 그것이다.


김해공항 확장이 어렵다는 주장은 새 활주로 건설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용역 결과를 근거로 삼는다. 기존 활주로(360도-180도)에서 시계 방향으로 30도를 틀어 교차 활주로를 건설할 경우 개당 3조∼4조 원이 들어가고, 2개를 건설하려면 신공항 건설에 버금가는 7조 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동북쪽 접근로를 가로막는 산봉우리를 깎는 데 활주로 건설보다 몇 배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 대신 시계 반대 방향으로 50도를 틀어 기존 활주로 남쪽 끝과 교차하는 서북-동남(310도-130도) 방향의 활주로를 건설하면 산을 절단할 필요가 없다. 비용도 4분의 1(7000억∼8000억 원) 이하로 줄일 수 있다. 교차 활주로 1개만 건설해도 2039년까지 수요 증가를 소화하는 데 문제가 없고 소음 피해도 180가구 정도밖에 늘지 않는다.


김해공항 관제를 책임진 공군에 물어보면 이것이 상식적 해법이다. 국토교통부 전문가들도 모를 리 없지만 상식과 이성이 발붙일 틈 없는 신공항 논란 속에 다들 입 다물고 몸 사리고 있을 뿐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김해공항을 확장할 방법은 검토할 생각조차 않고 굳이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를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새로 건설하는 길밖에 없는 것처럼 애초부터 여론을 오도하면서 ‘신공항 내전(內戰)’의 불씨는 지펴졌다.
 

교차 활주로 건설 이후에도 늘어나는 항공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 같은 방향으로 활주로를 하나 더 만드는 방법도 있다. 공군기지 이전 또한 신공항 건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용이하다.


유사시 김해 공군기지의 군사적 용도는 미군 증원부대가 본토에서 도착해 일본에서 해상으로 수송해 온 장비와 함께 전방으로 전개할 거점이 된다. 따라서 반드시 항구와 인접해 있어야 하는 제약은 있지만 꼭 김해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루 민항기가 200회가량 이착륙하는 번잡한 민군 겸용 공항은 오히려 유사시 작전 수행을 제약한다.


공군기지를 한적한 여수공항으로 옮기면 김해공항의 가용 부지는 100만 평(약 330만 ㎡) 이상 늘어나고 공군의 작전 여건도 개선된다. 여수공항 활주로를 확장하고 제5 전술비행단의 9개 수송기 대대와 공중급유기, 조기경보기 모두를 수용할 시설과 숙소를 건설하는 데 신공항 건설 예산의 3분의 1도 들지 않는다. 이렇게 용이한 해결책을 두고 공군기지 이전은 당초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예단해 버린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형 국책사업을 많이 벌일수록 예산과 인력을 늘릴 수 있는 국토교통부, 수혜를 기대하는 업계로서는 김해공항 확장보다는 신공항 건설이 훨씬 매력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부산과 대구의 일반 시민들에게는 1km라도 가깝고 1분이라도 빨리 오갈 수 있는 공항이 더 좋은 공항이다.


부산 시민한테는 신공항 건설 대신 김해공항 확장으로 절감되는 수조 원의 재원으로 공항-도심-해운대 연결 급행철도를 건설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실속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대구도 공항 폐쇄가 통일 이후 도시 경쟁력에 미칠 해악을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택시나 대중교통으로 편리하게 왕래할 수 있는 시내 공항을 두고 평양 함흥 청진행 국내선을 타기 위해 굳이 한 시간 걸려 밀양까지 가야 할 만큼 대구공항의 문제가 심각하고 긴박한가? 멀쩡한 공항을 소음 피해 해결과 부동산 개발의 제물로 바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일 뿐 아니라 대구로서도 언젠가 후회하게 될 근시안적 단견이다.


신공항 건설은 김해 공군기지 이전으로 항공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지를 봐가며 40∼50년 후에 추진해도 늦을 게 없다. 그 사이에 가덕도나 밀양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다. 정치인들의 포퓰리즘과 지자체의 편협한 이기주의에 맞서 이제 신공항의 피해자가 될 양식 있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2016년 6월 7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60617/78712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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