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프랑스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중 3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베르? 전투 100주년 기념식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두 손을 맞잡고 반성과 화해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금년 2월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은 드레스덴을 방문하여 1945년 2월 영국군이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드레스덴을 며칠 동안 폭격하여 온 시가지를 잿더미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이를 규탄하려는 독일 일부 세력에 대하여 그 근본적인 원인인 전쟁 발발 책임을 직시할 일이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책임 분배를 내세워 독일의 책임을 감경하려는 시도는 잘못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동북아 정치 환경에서는 낯선 감동과 존경의 모습입니다.
지난달 27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헌화하고 묵념을 하였습니다. 이어진 연설에서 핵무기의 참상을 일깨우고 "이곳에서 죽은 수십만 명의 일본인과 수많은 한국인, 수십 명의 미국인을 추도하기 위해 왔다"며 "그날의 기억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직시해 책임을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바마는 원폭 투하에 대해 사죄하지는 않았습니다. 2009년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오바마의 반핵평화주의와 관련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였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히로시마 방문을 앞두고 논란이 되었던 원폭 투하에 대한 사죄 여부나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면죄부 부여에 대한 우려는 더 이상 증폭되지 아니하고 사그라드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과 관련하여 일본 측은 은근히 원폭 투하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하고 또 그런 성과를 일부 거두었다고 만족할지도 모릅니다. 중국 측은 미국이 미·일 협력을 강화하여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이벤트를 벌인 것이라는 불만을 이어갈 것입니다. 한·일 과거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는 우리 동포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일본 측의 잘 짜인 각본의 결과로 불편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사건을 두고 관련 국가들의 입장과 생각은 다르지만, 역사의 진전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보다 단순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으로 인하여 20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은, 하루빨리 전쟁을 종결하여 더 큰 희생자 발생을 막고자 한 것일지라도 인류 역사에 크나큰 비극임은 틀림없고 희생자 대부분이 민간인임을 생각할 때 이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에 복잡한 정치적 계산과 해석을 끼워 넣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핵무기가 불러올지도 모르는 인류의 대재앙과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시달리는 우리의 입장에선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뜻에서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과 그 과정에서 보여준 절제된 행동과 메시지는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의 일환이라 할지라도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전쟁 책임 인정과 진정한 사죄를 명확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나 세력들이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계기로 삼아 원폭 투하로 인한 피해를 강조하며 전쟁 책임을 희석시키고자 한다면 그 부당함을 지적하되, 그 지적이 감정적인 것이거나 압박의 차원이 아닌 이성적인 것이거나 미래 지향의 차원의 것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바른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일본의 책임입니다. 일본이 1등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본이 독일처럼 반성하고 사죄하여 인접 국가는 물론 세계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고 그리 못함으로 인한 손해는 일본의 몫입니다. 우리가 필요 이상 분노하고 낙담하는 것은 실속도 챙기지 못하면서 우리의 품격만을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의연한 자세, 그것이 우리가 취할 태도입니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423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