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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못미치는 일본 지도자에 대한 우려이동우 | 2015.02.09 | N0.133

이동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


일본 열도는 지난 1일 새벽에 날아든 IS의 고토 겐지씨 참수 비보에 아직도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도쿄 시내에는 지금도 “나는 겐지다”라는 피켓을 든 추모객의 행렬이 끊기지 않고 있다. 비운의 주인공 겐지씨의 모친 이시도 준코씨는 아들의 참수 소식이 전해진 날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들이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으며 분쟁과 가난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했다”며 “아들의 신념이 전 세계인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식이 죽은 원인을 가리기 앞서 정부 공격부터 시작하는 풍토에 익숙한 한국인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였다고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은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높은데 비해 지도자가 국민수준에 못 미치는 드문 나라가 아닌가 싶다. 희생자 가족들의 의연함과 평화주의 신념에 숙연해질 정도인데 비해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반응은 그 수준에 못 미쳤다. 아베 총리는 최근 국회 답변을 통해 “현재는 자국민 구출을 위해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 무력을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면서 “당사국의 동의가 있을 경우 자위대의 능력을 살려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게 국가의 책임”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역사 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기술까지 수정하려들다가 미국 학계의 강한 비판을 자초한 아베총리의 수준을 보면 이번 인질 참수를 계기로 자위대 해외파병을 보다 쉽게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공산이 크다.


일본의 해외파병으로 한국은 식민지가 되었고 인류의 재앙인 태평양 전쟁을 초래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자국민 보호를 내세운 파병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자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인류의 되풀이된 역사이며, 일본은 그 대표적인 전범 국가이다. 그런 역사의 교훈을 놓고 아베총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해보았는지 의심스럽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도 자국민보호를 핑계로 시작되었고, 70년 여년전 이 지역을 불바다로 만든 나치의 침공도 동유럽에서의 게르만 민족 보호를 구실로 시작되었다. 지금 서방의 공적이 되어있는 푸틴의 러시아는 원래 동유럽에 대한 기득권이라도 있는 나라라서 서방의 전략가들 중에는 러시아를 너무 압박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견해를 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겐지씨 참수를 계기로 중동 등 분쟁지역에 파병을 쉽게 하겠다는 의욕을 내비치는 것은 명분이 없을 뿐 아니라 일본의 해외파병으로 고통을 당한 한국과 중국, 동남아국가들에게 악몽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서 배우는 것이 좋겠다. 이른바 오바마의 ‘전략적 자제’는 야당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IS격퇴를 위해 지상군 파병은 없을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는 ‘무력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더 큰 비극을 유발할 수 있다’는 미국의 오랜 해외개입과 파병에서 얻은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큰 전쟁의 싹을 초기에 자른다는 명분으로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6·25전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무력 개입은 전략적 실패로 끝났다. 2002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때만 해도 독재정권만 넘어뜨리면 중동이 평화와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엔 서구식 민주 세상이 열리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열린 것은 제어 불가능한 ‘판도라의 상자’였을 뿐이다. 아베 총리가 겐지씨의 어머니로부터도 배웠으면 좋겠다.


<경상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8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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