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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과학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법이동우 | 2015.10.14 | N0.130

이동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


매년 10월이 되면 일본에서 부는 노벨과학상 바람에 한국은 갑자기 과학 얘기를 꽃피운다. 연중행사가 된 지가 수년 됐다. 아마 삼성이 일본 소니를 제쳤다는 얘기가 나온 뒤부터가 아닌가 싶다.


‘일본이 하면 우리도 한다’는 우리 사회의 일본에 대한 경쟁심리는 마지막 남은 관문을 노벨과학상이라고 보는 것 같다. 다른 것은 일본만큼 혹은 더 잘 할 수 있지만 노벨과학상은 다르다. 노벨과학상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어느 한 분야나 한 사람이 특출하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국민성과 사회체제, 역사인식과 신앙에 이르기까지 그 나라의 근본이 노벨과학자를 길러내게끔 돼야 가능하다.


노벨과학자가 나오려면 몇 가지를 충족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거리가 아직 멀다. 되지도 않을 일을 일본 경쟁심리에 젖어서 10월만 되면 노벨과학상을 놓고 호들갑을 떨어보았자 국민적 자괴감만 커질 뿐이다. 우리가 노벨과학상을 못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본과의 극명한 차이점 한 가지만 들어보자.


한국 특파원을 오래 지낸 일본 유력일간신문 기자의 진단이다. “일본에는 센몬바가(전문바보)들이 즐비한데 한국에는 드물다.” 그러면서 그 기자가 들려준 어느 일본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일화.


1941년 12월7일 태평양전쟁을 촉발시킨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사실을 라디오 방송으로 전해들은 어린 제자가 훗날 노벨과학상을 탄 스승의 연구실로 달려가서 “선생님, 진주만 공습으로 대동아전쟁이 일어났습니다”라고 숨가쁘게 얘기했다. 실험에 열중하던 스승은 돌아보지도 않고 “잘 일어났구만”하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몇 년 후 그 제자가 다시 그 교수에게 “선생님, 일본이 전쟁에 져서 항복했답니다”라고 전했다. 그 날도 연구에 정신이 팔린 그 교수는 역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잘 졌구만”하고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다소 과장된 얘기일 수도 있으나 이렇게 한 분야를 부처님이 득도하는 과정처럼 몰입하는 신앙수준으로 공부에 전념하고, 다른 데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알 필요도 없어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센몬바가’라고 한다. 이는 일본사회에서 비아냥이 아니라 존경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런 교수가 드물고 연구풍토가 다른 한국이 10월이 되면 노벨과학상 타령을 하는 것은 ‘나무 위에서 고기를 찾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일본이 예외적이지도 않다. 노벨과학상을 많이 배출하는 미국·영국·독일 등의 나라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이들 나라의 풍토는 과학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사회과학계도 마찬가지이고, 관계나 언론계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다. 아무리 노벨과학상이 절실해도 한국 사회를 일본이나 독일, 영국처럼 갑자기 개조할 수도 없을 터. 괜히 노벨과학상 일본열풍에 우리가 한탄하거나 야심(?)을 불태울 필요도 없다.


노벨과학상이 국가위상을 가늠하는 전부도 아니다. 인문·예술·문화·스포츠 등 다른 분야들도 많다.


영국이나 독일이 노벨과학상을 많이 탄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노벨과학상과 인연이 약한 프랑스나 스페인이 우리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다. 서로 민족성과 원형질이 다르므로 각자의 길이 있고 장기가 따로 있다고 여길 뿐이다.


인구 5천만인 한국이 노벨평화상도 타고 과학상도 줄줄이 타고 여자골프도 세계를 제패하고 축구도 월드컵 8강권에 들고 경제력도 세계 10대권에 들고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물론 전체적인 국력의 신장으로 머지않아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영국·독일처럼 줄줄이 배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노벨과학상 체질이 아니라고 훌훌 털어버리고 우리 체질에 어울리는 것에 만족하면 된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옛 성현의 말씀처럼 “잘 할 수 있는 것을 잘 할 수 있다 하고 잘 할 수 없는 것을 잘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다.


<영남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51014.0103008291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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