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반기문 유엔 총장, 대통령 되면 외교 잘할 것 같다는 기대 상승
야당 對北觀에 가까운 반 총장, 명분·실익 나누는 '적극 외교' 필요
이제까지 '경륜 외교' 손질해 '전략 외교'로 업그레이드해야
예비 대선 후보 반기문의 등장은 기존 정치권의 구태의연함에 눌려 있던 사람들의 기대감을 부채질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말로 한국 사회에 팽배한 변화에 대한 갈망을 자극했다. 외교관 36년, 세계 최대 국제기구 총장 10년의 경험이 파벌 권력 정치에 매몰된 한국 리더십의 수준을 격상시키고 세련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는 바람이 반기문 돌풍의 요체다.
'험한' 정치를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그가 국내 문제의 개혁을 얼마나 이루어낼지는 몰라도 각종 난관에 봉착한 한국의 외교만은 어느 대통령감보다도 잘 수행할 것이라는 견해가 절대 다수다. 변화무쌍한 국제 현안들을 최일선에서 접한 경험은 글로벌 코리아의 지향점을 짚어내는 데 유용할 것이다. 반 총장 특유의 친화력과 세심함으로 관리한 세계 도처 지도자들과의 인맥은 한국의 입장을 확대하는 소프트파워로 작용할 것이다. 국제정치 역시 국내 정치 못지않게 힘과 권력이 거칠게 충돌하는 무대다. 그 와중에 한국이 평화와 번영의 길을 모색하는 데 관리해야 할 중요한 외교 대상을 둘만 꼽자면 하나가 미국이요, 또 하나가 북한이다.
아프리카 북부 남수단에 한국이 2013년 3월부터 유엔 평화유지군(PKO)을 파견한 것은 2011년부터 반 총장이 이를 지속적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남수단에는 중국이 2005년부터 공병과 의무부대를 파견해 놓고 대규모 경제개발 협력을 지렛대로 현지 유전 개발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미국은 직접 파병하지 않고 우방국들의 유엔 PKO를 통해 중국의 현지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 했다. 인도가 먼저 파병한 상태였고 일본도 미국의 요청에 부응해 2012년 3월 남수단 파병을 실행했다. 극심한 종족 분쟁이 진정될 기미가 없는 곳에 우리가 파병한들 국제적 기여도 측면에서 크게 기대되는 바는 없었다.
남수단 와랍주(州)의 오지 톤즈(Tonj)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치료해준 고(故) 이태석 신부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기억한다. 인프라 건설과 인도적 지원은 정부보다는 기업과 민간이 주도할 때 그 효과가 배가된다. 미국과의 동맹을 잘 가꾸어야 중국에 대한 지렛대가 작동하고 한반도 평화가 공고해진다.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사항을 매번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한국도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더 큰 명분과 실익을 만들고 이를 나누는 '적극 외교'에 눈을 뜰 때가 됐다.
필자는 전임 정부의 외교·안보 참모로 일하던 시절 워싱턴 출장 중에 반 총장에게 안부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덕담에 이어 정부가 북한에 쌀도 주고 잘해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2009년 5월 중순이던 당시는 북한이 3년 만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재개한 지 한 달 뒤이고 2차 핵실험(5월 25일)이 임박한 시점이어서 다소 의아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이명박 정부는 부시·오바마 정부를 설득해 쌀이 아닌 다른 곡물들로 대북 인도적 지원 품목을 대체하도록 했다. 2010년 늦여름 북한이 수해(水害)를 입자 정부는 쌀 5000t과 컵라면 300만개를 보냈지만 지원품은 수해 지역이 아닌 군부대에 보급되었다. 지난주에 북한은 중국에 대표단을 보내 대규모의 쌀 지원을 요청했다. 쌀이 들어오면 우선 군대를 먹이고 더 생기면 배급 제도를 강화해 민간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북한에 지원하는 쌀은 북한 주민을 돕지 못한다.
반 총장은 최근 방한 중에 "남북 간에 대화 채널을 유지해 온 것은 제가 유일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제까지 평양에 가려고 기울인 정성과 노력도 남다르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직을 다투는 도널드 트럼프도 김정은과 대화해 핵 문제를 풀겠다고 한다. 북한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을 치밀한 전략과 수단도 없이 포기시키겠다고 추진하는 대북 대화는 보여주기식 포퓰리즘 정치와 다름없다. 북한과의 대화 채널은 누가 만들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 당국이 필요하다고 믿으면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고 있다가도 갑자기 없어지는 것이다. 북한을 압박만 하다가 시간이 지체된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분열돼 제대로 된 경고(警告) 한 번 못 하고 시간이 흘러 왔다. 지금까지 드러난 반 총장의 대북관은 새누리당보다는 야당들의 그것에 가깝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의 기적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낳았고, 그는 존경받는 한국인의 반열에 올랐다. 자신의 선택과 국민의 판단이 합쳐져 앞으로의 평가가 결정될 것이다. 그의 '경륜 외교'는 이제 한국형 업그레이드 버전 '전략 외교'로 손질되어야 한다.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07/20160607034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