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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신고 발바닥을 긁는 리더들이동우 | 2016.06.01 | N0.121

이동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


청년실업대란 등의 재앙속 생존에 대한 절박함은 심화
민생은 지금 공포수준 달해
정치인은 정치쇼 하지말고 정면으로 승부를 펼칠 시기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5월29일 오후 5시30분 대표적인 뉴스 포털에 올라있는 ‘많이 본 뉴스’를 살펴보았다. 남성들이 많이 본 뉴스. “구조조정 해운사들 생존까진 산 너머 산” “OECD 평균의 2~3배 성장하던 한국, 10위 밖으로 밀려” “현대중공업 8월부터 임금 50% 감축” “3만달러도 못 가보고 한국경제, 성장이 멈춘다” “큰손 전유물 사모펀드 개인투자 가능해진다” 대중의 관심을 많이 끈 상위 10대 뉴스 중에서 5건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경제뉴스였다. 정치 뉴스는 “20대 국회, 30일 개원한다”는 한 건뿐이었다.


여성이 많이 본 뉴스. “전국 미세먼지 평소의 두 배 수준”이라는 대기오염공포 뉴스에 이어 “뇌성마비 아들을 45년째 수발한 어머니의 애환”을 다룬 기사와 “30대 여성암 1위 자궁경부암”이 뒤를 잇고 있었다.


경제성장이 거의 멈춰선 상황에서 고령화, 저출산과 인구감소, 청년실업대란이라는 대재앙 속에 사람들은 생존의 절박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을 포털의 뉴스들이 대변하고 있었다.


오늘의 한국을 ‘제2의 외환위기’로 규정하는 것도 본질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는 무엇보다 젊은 나라였고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기사회생이 가능한 구조였다. 실제로 그 덕분에 되살아났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는 늙고 기력이 쇠한 나라다. 공동체는 사라졌고 파편처럼 흩어진 사회구조다.


외환위기 이후 지도적 인사들마저 그저 ‘정년연장형’ 아니면 ‘생계형’이 태반으로, 제 앞가림하기에 급급한 모습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큰 우환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인 기업들의 병이 깊은 것이다. 싫든 좋든 부자가 잘 되어야 가난한 사람들도 먹고살 길이 열리는데 지금은 재벌도 앞날이 캄캄하다.


정부통계에 의하면 20대 재벌에 속한 기업 중 37%가 부실 징후를 보이고 있다.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STX가 대표적이다. 4대 그룹을 제외하면 대기업도 셋 중 하나는 부실상태라는 진단도 있다. 재벌과 수출·제조업에 의존한 한국경제의 발전 시스템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계도 부도 직전이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가계빚 총액이 3개월 새 20조6천억원이나 늘어 지난 3월 말 기준 1천223조원을 넘어섰다. 1분기 비은행예금취급사의 기타대출은 4조9천억원 늘어 154조원을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생계가 힘들고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대출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문 닫는 가게들이 줄을 이어서 ‘간판 업체들만 호황’이라는 자조적인 얘기가 나돌 정도이다. 작년에 자영업자 수는 556만3천명으로 전년보다 8만9천명 감소해 1994년 이후 가장 적었다. 청년들은 생존의 절벽에 서 있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이 9.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벌부터 구멍가게 주인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모두 위기에서 비켜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민생 현장을 전하는 보도의 결론이다. 그동안 ‘일자리 보호’나 ‘구조조정 반대’를 외쳐온 노동계도 총체적인 개혁을 주문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노동계가 이럴 정도로 지금 민생은 심각 수준을 넘어 공포로 치닫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존공포’에 휩싸여 살고 있는데 나라를 이끌겠다는 지도자들 중 누구도 ‘먹고사는 삶의 근본문제’가 걸려있는 경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어 파산, 대량해고, 청년실업의 현장을 연일 누비면서 애타는 그들과 같이 고민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말기암 환자 같은 경제현실이 너무 벅찬 문제라서 섣불리 나서면 손해 본다는 얄팍한 정치적 계산들을 하고 있다면 애당초 리더의 자격이 없다. 하루하루를 절박하게 살아가는 생활자들의 관심과 그들의 삶의 터전을 비켜나서, 신문 사진과 TV 화면에 잘 나올 이벤트성 ‘기획행보’ 경쟁이나 벌이는 것은 ‘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정치가 아니고 ‘정치 쇼’일 뿐. 생존위기에 놓인 한국의 앞날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이 할 짓이 아니다.


<영남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60601.0103008234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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