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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명 다한 5년 단임제 헌법 김황식 | 2016.05.23 | N0.115

김황식 前 국무총리


1987년 10월 29일 여야 합의로 이루어진 제9차 개정 헌법은 제6차 개헌(1972년 12월 27일) 이후 지속된 독재체제를 타파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국민의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것입니다. 그 핵심 내용은 국민의 열망에 따라 직접선거에 의하여 대통령을 선출하고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하여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한 것입니다. 물론 기본권도 확대하고 헌법재판소 제도를 새로이 도입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독재체제가 들어설 위험은 없어졌고 기본권도 나름대로 보장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5년 단임의 대통령중심제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임기 초반의 강력한 권한 행사에 비하여 임기 후반에 찾아오는 이른바 레임덕으로 인하여 국정의 안정적, 지속적 추진이 어려워지고 또한 장기적 비전을 갖고 국정을 수행하기보다는 단임의 임기 중 성과를 얻기 위하여 조급한 국정 운영에 매달리는 폐해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어 그것이 오히려 대화와 타협을 기반으로 한 민주적 국가 운영을 가로막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1987년 헌법은 역사적 수명을 다했으며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헌법을 개정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으며, 많은 국민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일부 역대 대통령도 임기 초반에는 개헌을 반대하다가 후반에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도 이러한 사정의 반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헌법 개정이 어려운 것은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대통령직에 근접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이러한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안타깝습니다. 개개 정치인의 성취보다는 대한민국의 이익과 장래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의 `우리나라`이지 유력 정치인 몇 사람의 `내 나라`가 아닙니다.


권력구조에 관한 헌법 개정 논의는 국정의 효율적 운영과 책임정치의 구현, 민주적 대화와 타협, 국민통합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권력구조가 어떤 것인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면서 4년 중임제를 도입하되 부통령이나 국무총리 제도를 활용하여 대통령과 역할 분담을 하는 방안,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방안 등 폭넓은 방안이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 개정 논의는 여기에 한정될 수는 없습니다. 변화된 시대 상황에 맞게 기본권의 보호영역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기본권을 규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간존엄의 바탕이자 모든 기본권의 전제가 되는 생명권, 정보화에 따른 새로운 환경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정보기본권, 인권의 보편성과 인권보장의 국제화 세계화 추세를 고려한 정치적 망명권(비호청구권), 일반 재산권과 차별화된 지적재산권 등을 규정할 것인가를 포함하여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입법부 내에서 권력분립원리를 구현하여 다수의 횡포를 방지하고, 법안 심의의 졸속과 경솔을 방지하고 지역 이익의 균형적 반영을 위하여 상원을 도입하는 문제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현행 헌법은 독일의 헌법재판소를 본받아 헌법재판소제도를 도입하면서도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계를 명백히 규정하지 아니하여 양 기관의 역할 및 권한과 관련하여 의견 대립과 혼란이 있으므로 이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지방자치제도의 실질적 구현을 위한 헌법적 보완, 감사원의 소속에 관한 논란 등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기본법으로서 국가의 명운과 국민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현행 헌법의 폐해와 미흡함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앞서 본 비합리적 이유로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은 선진일류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취할 태도는 아닌 것입니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369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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