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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에서 놓친 것최중경 | 2016.05.29 | N0.116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경제학 박사


4·13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참패한 것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 앞에서 날고 긴다는 정치평론가들부터 총선 하루 전에 한 말을 바꾸고 꿰맞추느라 체면을 구겼다.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당한 충격적 패배여서 아마도 한국 선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왜 집권여당이 참패했는지에 대해서는 익히 분석이 잘되어 긴 말 되풀이하지 않겠지만 전문가들이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4·13 총선 참패를 초래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대북 강경책이었다는 사실이다. 전쟁을 불사하는 듯 결연해 보이는 의지, 참수공격이네 뭐네 생살을 긋는 듯 살벌한 언어가 이북 실향민에게는 친족에게, 친구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비극을 떠올리게 했다. 군대에 외동아들을 보내 놓고 내무반 가혹행위 가능성에 마음 졸이던 40~50대 부모들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외동아들이 민족상잔의 피보라 속으로 빨려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고민 끝에 이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여당에 등을 돌렸다. 골수 여당 지지 성향이더라도 투표장에 가기를 거부하여 사실상 반대표를 던진 것과 동일한 효과를 냈거나 투표장에 가서 적극적으로 야당에 힘을 실어주었다. 햇볕정책의 야당이 힘을 받으면 분위기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여당의 패배 원인에서 전쟁회피 심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선거 결과를 설명하려면 경기 침체, 청년일자리 부족, 공천 잡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북풍 출현=보수 정당에 유리`라는 공식은 영원히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천안함 사태 직후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여당이 참패했을 때 더 이상 이 공식은 작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거와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패턴을 보였다.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 서서 눈물로 전몰 장병의 이름을 한 사람씩 부를 때 목이 메는 감동 저 뒤편에서 `보통사람들이 있지도 않은 전쟁의 그림자를 보고 기겁한 것`임을 이해해야 대한민국의 선거 민심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쟁이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평화라는 `사실`이 누가 나쁘고 누가 잘못했는지 추상같이 따지는 `기준`보다 무게가 더 나가는 선거 재료임을 인식해야 보수의 길이 보인다.


이제 쪼그라든 보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한때 두 자릿수의 지지율을 보이며 1, 2, 3위를 다투던 여당 대선 잠룡들은 총선 직후 한 자릿수 지지율로 추락하고, 일부 조사에서는 0에 가까운 수치를 보인 바 있다. 아무리 일시적인 현상이라 해도 여당에 두 자릿수 지지를 받는 잠룡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여당이 마주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임을 말해 준다. 보수가 이 장면에서 진보가 쓰는 경제 답안을 어깨너머로 베껴 쓰면 다음 선거에서 어떤 점수를 손에 쥐게 될까? 사회적 시장경제가 보수가 나아갈 길이라고 하던 여당 정치인들이 힘을 더 받을 수도 있기에 하는 얘기다. 이번보다 점수가 높을지는 몰라도 석차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상대방 어젠더를 선점하여 상대방의 기동공간을 줄인 2012년 대선 전략과 평소에 진보가 쓰는 답안을 베끼며 정체성을 잃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임을 알아야 보수의 미래가 있다. 진보가 쓰는 경제 답안을 베끼다 다음 선거에서 2등 하면 그 후 반세기 동안 보수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야권 분열을 보고 보수 인사들이 일본 자유민주당 반세기의 한국판을 떠올렸지만 그 반대를 상정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보수는 보수다워야 유권자인 국민에게 최소한 간헐적인 선택이라도 받는 것이다. 원산지 불명의 잡탕이념은 정치 빈민의 신분을 자청하는 것임을 새겨야 한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38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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