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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타 도자기 400주년 축제를 보며 김대기 | 2016.05.22 | N0.114

김대기 KDI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해마다 5월 초가 되면 일본 사가현 아리타 마을에서 도자기 축제가 열린다.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도시에 100만명 이상이 몰리는 대축제다. 올해는 인근 구마모토에서 큰 지진이 났는데도 여느 때보다 더 성대하게 열렸다. 올해가 이곳에서 일본 최초로 자기가 탄생한 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400년 전이면 1616년이다. 임진왜란 때 끌려온 조선의 도공들이 이곳에서 자기를 처음 만들었던 해다. 당시 일본은 다성이라고 불리는 센리쿠가 다도법을 완성한 이후로 차 문화가 사회지도층인 무사들에게 급속히 확산되던 시기다.


차를 품위 있게 마시기 위해서는 좋은 자기그릇이 필요했지만 당시 일본은 질이 한참 떨어지는 도기그릇밖에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조선의 찻사발과 같은 그릇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것이 실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시절에 자기는 지금의 반도체에 버금가는 일류 상품이었다. 특히 하얀 백자에 파란 안료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는 유럽인들의 로망이었다. 15세기부터 명나라는 이것 하나로 세계를 지배할 정도였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들은 명나라 자기를 유럽으로 실어나르는 데 바빴고 세계의 부는 중국으로 몰렸다.


17세기 중반 대륙의 주인이 청나라로 바뀌면서 도자기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청나라는 명의 잔존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도자기 가마를 폐쇄하고 해안을 봉쇄해 외국과의 교류를 막았다. 그 결과 유럽 시장에 중국 도자기 공급이 끊기게 됐는데 일본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갖게 됐다. 1653년 이마리 도자기라는 이름으로 처음 수출을 시작한 이래 수백만 점이 수출됐다.


도자기 수출은 일본의 부를 급속히 키웠고 별 볼일 없던 일본이란 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보다 더 큰 성과는 선진국 네덜란드와 교역이 이뤄지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문명이 일본으로 유입됐다는 사실이다. 네덜란드 의학, 천문학, 지리학 등에 일본 사회는 열광했고 이것이 결국 근대화의 밑바탕이 됐다. 조선 도공이 전수한 도자기 기술이 일본의 운명을 획기적으로 바꾼 계기가 됐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하다.


조선이 백자를 처음 만든 때는 대략 1470년께이니 일본보다 150년, 유럽보다는 240년 앞섰다. 그러나 세계 도자기 역사에 조선은 없다. 일본은 조선에서 뺏은 기술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데 조선은 그저 사대부들이 즐기는 대상에 그쳤다. 우물 안 개구리 안목이 초래한 결과다.


조선 도공들은 세계 최고 기술을 지녔지만 사회적 대우는 형편없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사기 장인들은 평생 그릇만 만들어야 하고 자식에게 세습까지 해야 했다. 그릇을 만들어 돈을 벌 수도 없었으니 가난의 연속이었고 흉년이 들면 제일 먼저 굶어죽는다고 할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일본은 포로인 조선 도공들을 높이 평가하고 좋은 대우를 해줬다. 백자 생산에 주도적 역할을 한 충남 출신 도공 이삼평에게 당시 최고 계층인 무사와 동등한 대우를 해줬고, 사후 신사에 모실 정도로 그 공적을 기렸다. 아리타 마을에 가면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조(陶祖)이삼평비도 있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 중에는 이삼평 외에도 심수관, 백파선 등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장인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조상 중에 변변히 이름을 아는 도공이 한 명도 없다. 만약 이삼평이 그때 일본에 끌려가지 않고 조선에 남아 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5월은 도자기의 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자의 고향인 경기도 광주를 위시해 여주, 문경 등 전국 각지에서 도자기 축제가 열렸다. 도자기 관람만 할 것이 아니라 조선 도자기의 슬픈 역사를 곱씹으며 우리 사회가 과연 장인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366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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