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에서 지금처럼 문화, 예술, 스포츠 분야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진 때가 있었을까?
최근 종영한 ‘태양의 후예’는 중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주인공들을 최고의 한류 스타로 만들었다. 해외에서 엑소, 빅뱅, 소녀시대 등 K팝 가수들의 인기도 대단하다. 스포츠 스타들도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여자 골프는 한국의 독무대다.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밖에 모르는 외국인들도 한류 스타 한두 명은 안다.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수출되고 관련 상품 홍보를 더하여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내고 있다.
한류 스타는 뛰어난 재질과 꾸준한 노력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타고 난 매력과 전문 지식에 외국어 실력도 갖추어 전 세계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스타가 많아졌다. 한 명의 스타가 탄생하기 위해 많은 투자와 훈련이 필요하다. 한국은 한류 스타를 육성하는 시스템도 세계 일류다.
과거에 상상하기 어려웠던 이런 성과에는 대한민국의 경제·정치·사회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제 발전으로 지금 우리 청소년들은 신체 발육이 좋고 교육도 많이 받았다. 국내 시장 규모가 커지고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 영화, 드라마, 가요, 스포츠 분야의 우수한 인재가 늘었다. 거리낌 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으로 성공하면 존중하는 새로운 사회 분위기도 크게 작용했다. 개방화·국제화로 세계 시장에서 실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열렸다. 싸이는 유튜브에서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한류 열풍이 아직 대한민국 전체의 이미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국가 브랜드 평가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안홀트-GfK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2008년 33위에서 2011년 27위로 꾸준히 상승한 후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일본(6위)은 물론이고 중국(23위)에도 뒤졌다. 기업들의 해외 진출, 문화·예술에서는 우수하지만 국민 역량, 정부 정책, 정치사회 제도 등 다른 분야에서 미흡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스타를 더 많이 키워야 한다. 한국인은 세계 어디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우수한 재질과 부모의 높은 교육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재를 키우는 교육과 훈련 시스템은 세계 일류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 30년간 대학순위를 발표한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의 2015년 세계 대학 평가에서 서울대가 105위, KAIST가 184위로 아시아의 일본·중국·싱가포르의 일류 대학들에 밀렸다.
우리 사회는 과학·공학·기술 분야에서 창조적인 인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한국인 과학자가 많아졌지만 아직은 미흡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미디어랩을 만든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한국이 짧은 시간에 이룬 성과는 놀랍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굉장한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받는 일방적인 교육제도가 창의성을 죽이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공대 교수들은 함께 저술한 『축적의 시간』에서 한국 교육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는 창의적인 역량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창조적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교육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교육부가 이공계 대학 정원을 많이 늘리고 있지만 이공계 졸업자의 질은 그냥 높아지지 않는다. 부실 대학은 정리하고 세계적인 대학은 더 키워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선진국에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어릴 때부터 학생들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우수한 인재로 크도록 해야 한다. 특히 여학생 및 소외 계층에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창조성이 부족한 것은 그에 대한 대가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혈연·학연·지연으로 얽매여 있고 평등의식이 강해 실력만으로 대우를 받기 어렵다. 심지어 대학에서도 연구·강의 능력보다는 근무 연수에 따라 급여가 정해지고 있다. 중국 대학은 연구 실적에 따라 최대 10배까지 연봉이 차이가 난다. 제대로 된 평가를 통해 우수한 인재들이 보상받는 직무·성과 중심의 급여제도를 도입하는 개혁이 사회 전체로 이뤄져야 한다.
스타 몇 명만으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화와 신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과거와는 다른 세상이다. 스타 한 명이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다. 한국은 문화·과학·기술·산업계의 더 많은 스타를 필요로 한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중국과 일본에 계속 뒤처져 이대로 아시아의 변방국가로 추락할 수는 없다. 아시아의 중심으로 우뚝 서려면 창조적 인재와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 가야 한다.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