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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선제적 對北 전략 필요하다김숙 | 2016.05.10 | N0.110

김숙  前 駐유엔 대사, 前 국정원 1차장


요란스러운 선전 끝에 지난 6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제7차 대회가 끝났다. 결국 김정은이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되는 등 체제 공고화 목적의 정치적 쇼로, 역시 내놓을 것이라곤 오불관언 핵무기 개발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이번에 김정은은 이른바 조국통일 3대 헌장에 따른 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장했다. 요약하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지하며 김일성이 만든 방안에 따라 통일하자는 말이다. 또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긴장 완화를 목적으로 남북군사회담 개최도 언급했다. 가장 중요한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 지위, 자주권을 침해받지 않는 한 핵 선제 불사용, 전 세계 비핵화 실현을 위한 노력 경주, 핵과 경제의 병진 노선 항구적 견지 등을 밝혔다.


핵 관련 언급은 일일이 논평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거짓말과 논리적 모순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핵 선제 불사용 언급은 불과 한 달여 전까지 여러 차례 서울과 워싱턴을 핵으로 선제공격해서 불바다로 만들겠다던 발언과 정면 배치된다. 또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는 외면한 채,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을 항구적으로 견지하면서 세계 비핵화 실현을 위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어떻게 노력한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핵 문제와 남북관계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당장 떠오르는 의문점이 있다.


우선, 다음번 핵실험은 있을 것인가, 있으면 언제일 것인가 하는 문제다. 풍계리에서의 군사 기술적 준비는 끝났고 이제는 김정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인 듯하다. 그렇다면 젊은 독재자의 충동적 통치행위의 심리 상태를 시간별로 파악하긴 불가능하다. 어쩌면 지난 4차 핵실험 때처럼 이미 다음번 실험 일자에 관한 명령서에 서명해 놨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국제사회, 특히 중국과 미국의 움직임을 당분간 살피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고강도 도발이 거의 일상화된 최근 상황에서 유추컨대, 강도 높은 제재 유지 결과 고립이 심해지고 그 고통이 체제 차원에서 느껴진다면 결국 올해 안에 미국 대선이나 중국의 제재 이행 완화, 또는 남남갈등 등을 겨냥한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로선 가급적 그러한 비관적 가정 아래 외교·군사적 대비를 하는 게 지혜로운 태도다.


다음으로, 남북군사회담 개최 문제는 김정은의 발언이 대화와 협상 필요성의 단순 언급으로서 공식 제의는 아니나 확성기 방송에 대한 입장을 김정은의 입으로 재확인했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우리도 입장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다만, 지난해 8월 목함지뢰 도발 후 남북 고위급회담 결과 얻었던 교훈과 국민 여론을 고려하되, 이제 모든 것은 핵 문제와 연관 지을 수밖에 없다.


이번 7차 당대회 결과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의도는 더 이상 다른 가정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명확해졌다. 남북대화든 6자회담이든 북한과의 상호작용은 모든 것이 북한의 핵 포기 의지 여부에 달렸음은 매우 안타까운 딜레마다. 즉,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력 수단은 배제하고 대화와 설득(압박 수단을 겸용한)을 통해야 하는데, 막상 북한은 그러한 대화를 통한 설득이 매우 난망한 상황이다. 조지프 헬러의 소설 ‘캐치-22’에 나오는, 폭격기 조종사들의 출격 회피 핑계가 어떤 이유를 대든 거부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상황과 유사하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결국 배를 타고 도피하지만 그건 소설이고, 현실의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따라서 선제적이고 대담한 중기적 외교·안보 전략이 필요하다. 당장의 제재 이행이 중요하고 이를 소홀히 해선 안 되지만, 언제까지나 눈앞의 단기 전략에만 매몰돼 있을 순 없다. 5년 이상의 앞을 내다보는 장기 전략도 지금으로선 능력 밖의 허영처럼 느껴진다. 현 정부 임기 1년 9개월을 남긴 지금 북한의 시간 끌기 함정을 유의하면서 핵 포기 유도 가능성을 키워 우리의 통일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서는 중기적 전략을 마련, 시간이 되면 이를 시행하고 다음 정부에 전승할 호흡을 가다듬어야겠다. 과거에 검토했으나 추진하지 못한 좋은 안들도 참고할 수 있다.


나폴레옹이 말했다. “빈을 함락하려고 시작했으면 함락시켜라!”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고들 한다. 적어도 단기·중기적으론 옳은 말이다.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다. 목표가 있었으니 달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51001033011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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