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함께 만드는 이슈 > 칼럼
관료 전성시대의 대통령 1인 외교김태효 | 2016.05.09 | N0.109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현 정부 외교 주요 보직은 외교관·군 출신 관료 독차지
자신의 이름과 직을 걸고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해
대통령에게 남는 것은 권력·사람 아닌 일의 결과
 

총선에서 지고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돼도 대외 관계는 행정부가 책임지고 추진해야 할 영역이다. 입법기관인 의회도 얼마든지 안보와 외교에 관한 법안을 상정할 수 있지만 한국의 세계 전략을 논하기에는 국내 권력 정치에 기울이는 열정이 너무 커 보인다. 박근혜 정부 외교 인사(人事)의 특징은 주요 보직을 외교관과 군 출신의 직업 관료들이 독차지하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컨트롤타워인 국가안보실은 군 출신인 김장수, 김관진 실장 체제로 이어졌다. 국가안보실 실무를 총괄하는 1차장직은 직업 외교관인 김규현씨와 조태용씨가 이어서 맡고 있다. 국가안보실 2차장 겸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자리는 또 다른 외교관인 주철기씨로 출발했다가 그 후임은 내부 자리 이동한 김규현씨가 맡았다. 국방부는 김관진 장관이 국가안보실장으로 가면서 그 후임으로 한민구 장군이 임명됐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자리를 지키는 보기 드문 기록을 세울 태세다. 임기 초 국정원장을 맡았던 남재준씨는 군 출신이고 현 이병호 원장은 국정원 출신이다. 오직 통일부 하나만이 학계에 있던 류길재, 홍용표 장관으로 채워져 비관료 출신이 안보 부처의 수장을 맡은 경우다.


관료들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될 뿐 아니라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습득한 경험과 정보가 남다르다는 점에서 이들을 주요 정무직(政務職)에 기용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다만 행정부의 중추 세력인 직업 공무원의 능력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발산시켜 대통령이 구현하고자 하는 국정(國政)을 추진할 것인가의 문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와 일선 부처가 올리는 보고(주로 서면 보고)를 참고하되 정책 결정은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따르는 리더십을 보였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각 부처 간에 강온파가 왈가왈부할 때, 개성공단 폐쇄라는 결정을 내렸다. 북한을 무조건 추종하는 통진당의 해산과 좌경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도 대통령의 확고한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론이었다.


올바른 국가관과 결단력이 뒷받침된다는 전제하에 대통령 1인의 역할에 집중된 외교 스타일은 정책 효율을 배가할 수 있다. 이란 방문 중에 이란식 히잡 '루사리'를 착용한 것도 상대방 지도부와 국민의 친근감을 이끌어내 정상회담의 성과를 끌어올리려는 대통령 '개인기 외교'의 일례가 된다. 문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대통령이 전문 분야의 세세한 내용까지 공부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외교 사안은 비공개하에 보안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선택과 행동의 타이밍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관료들이 불편하고 어려운 정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결과에 대해 자신의 이름과 직을 걸고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도입 논란이 2년간 가열되도록 방치하여 미국과 중국 양측의 불만을 함께 자초한 것도, 퇴로를 열어두지 않고 3년간 아베 정권과 기 싸움을 벌였다가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를 시간에 쫓겨 봉합한 것도 담당 부서와 참모들이 국민 여론을 이끌지 못하고 시류만 살핀 탓이다. 전임 정부의 과제라며 기피하던 녹색성장·기후변화 대응의 주도권은 미국과 유럽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대통령은 역사에 업적을 남기길 원하지만 공무원은 자신의 임기 중에 큰 사고가 없이 그저 시간만 잘 가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은 자신이 볼 수 없는 업무 현장의 실상을 여과 없이 보고하고 때로는 무겁고 부담스러운 결정도 종용하는 참모를 곁에 둬야 한다. 물론 그 참모의 소신과 진솔함을 노여움 없이 허락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정책의 무책임성 말고도 관료에 의해 장악된 국정이 겪을 공산이 큰 또 하나의 문제는 개혁에 대한 무관심이다. 아무리 애국자인들 공무원 출신 정무직 관료가 자신이 속했던 친정 부처의 규제 권한과 예산을 줄이기 위해 발 벗고 나서기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렵다. 국회에 가로막혀 있다는 민생 법안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존의 맹점을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정부가 민간에 또 다른 규제와 감독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중·장기적으로 통일 대비 역량과 외교 경쟁력을 좌우할 국방 개혁 현안들, 외교부 인력 충원과 인사의 혁신 방안들은 군과 외교관 출신 참모들의 암묵적 동의하에 방치돼 왔다.


대통령을 따르고 지지했던 정치인들은 때가 되면 또 그다음 대통령을 찾아 흩어질 것이다. 5년 국정을 '성실하게' 보좌한 관료들은 그다음 찾아올 하늘 위의 구름도 큰 충격 없이 지나가길 소망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남는 것은 권력도 사람도 아닌, 일의 결과다.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13/2016031302027.html

  • facebook
  • twitter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