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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투쟁 아닌 일하는 새 국회를 보고싶다박재완 | 2016.05.07 | N0.108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장


북핵, 경기 침체 온 나라 뒤흔들 대선… 난제 쌓인 우리 현실
‘경제민주화’‘큰 정부’ 어설픈 총선공약 먼저 말끔하게 정비하라


이달 말이면 20대 국회가 출범한다. 새 국회가 맞닥뜨린 상황은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우선 북한의 무모한 핵 개발과 마이동풍 행보에 따라 한반도 안보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자칫 급변 사태의 돌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는 선진국 문턱의 깔딱 고개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는 직격탄을 맞았다. 게다가 저출산·고령화, 한계에 이른 주력산업 경쟁력, 한참 뒤진 ‘4차 산업혁명’ 등이 겹쳐 저성장 기조가 고착될까 걱정이다. 학력과 소득의 대물림이 심화되는 경고음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잦은 집단 갈등도 문제다. 개발시대와 달리 누구도 손해 보지 않으면서 적어도 한 사람에겐 이익이 되는 ‘파레토(Pareto) 개선’의 여지가 줄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정책은 ‘밀양 송전탑’ 사례처럼 갈등을 빚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회자본’이 열악한 데다 국민들의 학력이 높아지고 한쪽으로 쏠리는 성향이 두드러져 갈등을 풀기는 더 어려워졌다. 오히려 미숙한 대의정치가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다.


정치 일정 역시 새 국회의 걸림돌이다. 올 하반기부터 정국은 내년 대선 가도로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바로 2018년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20대 국회 전반기는 권력 투쟁의 소모전으로 점철될 개연성이 크다.


여러 난제와 악조건에서 닻을 올리게 됐지만, 20대 국회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다. 16년 만에 본격적으로 가동될 3당 체제 때문이다. 새 국회는 19대 국회를 반면교사로 양당 정치의 틀에 갇혀 흑백논리가 지배했던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자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절실하다.


첫째, 각 정당은 어설픈 총선 공약부터 말끔히 정비해야 한다. 특히 야당들은 책임 있는 수권정당을 자처하려면 철 지난 ‘경제 민주화’나 무책임한 ‘큰 정부’의 정강 기조를 과감하게 손질해야 한다. 그 대신 유명무실한 정당 부설 정책연구소의 역량을 강화해 ‘제3의 길’ 탐색에 힘쓰기 바란다. 같은 맥락에서 입법 만능주의의 유혹을 물리치고 행정부, 자치단체나 민간이 할 일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의정 시스템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수준을 끌어올려서 예측 가능하도록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 정기회와 임시회 구분을 없애고, 여름철 휴가 기간 외엔 늘 국회를 열어야 한다. 월요일엔 공청회나 청문회, 화요일 소위원회, 수요일 상임위 전체회의, 목요일 법사위와 특위, 금요일 본회의 등으로 정해 두는 게 좋다. 본회의 의안도 상임위 통과 순서에 따라 결정하면 티격태격할 필요가 없다.

 

셋째, 회의장 표결 원칙을 완화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비추어 제안 설명, 찬반 토론과 표결의 시간과 장소를 지금처럼 굳이 특정할 필요가 없다. 마감 시한을 설정하고, 온라인이나 서면 등 다양한 의사 표현 방식을 허용하면, 국회선진화법이 정한 가중다수결 요건을 완화해도 될 터이다.


넷째, 방만한 재정 팽창에 제동을 거는 장치도 보강해야 한다. ‘의무지출’을 늘릴 때에는 ‘페이고(pay-go)’ 원칙에 따라 그 소요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과 함께 확정해야 한다. 국회 예산 심의도 정부 예산 편성처럼 ‘총액배분-자율편성(top-down)’ 방식으로 순서를 바꿔야 한다. 예결특위가 거시예산부터 심의해 예산심의지침을 확정하고, 상임위는 그에 따라 부처별 미시예산을 심의하면 쪽지예산 등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상당한 재정 부담이 따르는 법안은 상임위가 예결특위와 협의하도록 국회 규칙도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다섯째, 상임위 정책 질의와 구분하기 어렵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국정감사는 부작용이 적지 않으므로 필요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끝으로, 국회를 통과한 핵심 법률과 예산은 여야정이 모인 가운데 대통령이 서명하고 공포하는 관행도 정착되면 좋겠다.


새 국회가 일할 4년은 참으로 중차대한 시기다. 300명 선량들이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Leonidas)가 이끌던 전사들처럼 테르모필레(Thermopylae) 협곡에서 순직할 각오로 일해 주길 기대한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60507/779676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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