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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북한 전력난과 동북아 슈퍼그리드 김상협 | 2016.05.11 | N0.111

김상협 KAIST 경영대학 초빙교수·前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제7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어떤 부문은 한심하게 뒤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36년 만에 열린 당대회에서 그가 `한심하다`고 자탄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전력이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김 위원장은 "전력 문제를 푸는 것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의 선결 조건이며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의 중심고리"라고 규정하고 "나라의 긴장한 전기 문제를 해결하며 에네르기 보장을 경제 장성에 확고히 앞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수력을 위주로 하면서 자연 에네르기 원천을 적극 리용하여 국가적인 에네르기 수요를 자체로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록색생산방식`을 화두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북한판 녹색성장전략이라 부를 만하다.


그렇다면 북한 전력 사정이 어떻길래 취임 이래 가장 중요한 연설에서 스스로 치부를 드러낸 것일까.


박구원 한국전력기술대표에 따르면 2014년을 기준으로 북한의 발전설비 용량은 725만㎾로 추정되며 이는 한국의 13분의 1 수준이다. 이 자체도 큰 격차지만 노후한 시설과 송배전망을 감안할 때 발전설비의 평균 이용률은 35% 남짓해 실제로는 30분의 1 수준이다.


북한의 실생활을 체험한 외교관이나 주재원들이 전하는 소식은 더욱 참담하다.


전압이 워낙 낮아 전기포트로 물을 끓이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리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도 사용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것이다. 고층 아파트도 기피 대상인데 엘리베이터가 아예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나마 이것도 평양 얘기고 지방으로 가면 아예 전기 자체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부지기수로 한겨울을 땔감 아니면 그냥 견뎌야 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기에 기후변화까지 가세한다. 지난해 100년 만의 가뭄을 겪은 북한은 물 부족으로 인해 전체 발전량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수력발전이 커다란 차질을 빚었다. 이로 인해 김책제철소를 비롯해 주요 공장이 장기간 가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는 북한의 기후변화 충격이 한국보다 훨씬 더 심각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핵실험 이후 중국으로부터의 원유 도입도 압박을 받고 있어 전력 문제는 그야말로 발등의 불인 셈이다.


북한에 태양광 바람이 불고 있는 건 그래서다. 이미 망가진 송배선망과 상관없이 필요한 곳에서 에너지를 생산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둥에서는 100달러 미만의 태양광 패널이 불티나게 팔리는데 이를 통해 텔레비전을 보고 조명을 쓴다고 한다.


김 위원장 지시로 2014년 설립된 `자연에네르기 연구소`는 2044년까지 재생에너지로 500만㎾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천문학적 비용과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북한 홀로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많은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주목할 것이 `동북아 슈퍼그리드`다. 지난 3월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류젠야 중국 국가전력망공사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로만 베르드니코프 러시아 전력회사 수석부사장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중·일·러 동북아 지역 4개국의 역내 전력망을 하나로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연구사업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이달 하순엔 서울에서 워크숍도 열린다.


손정의 회장은 필자에게 "몽골의 풍력자원만 제대로 활용해도 동북아 전력 수요를 경제성 있게 충족시킬 수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빠짐없이 거론하는 것도 아무르강의 수력자원을 활용한 전력망 연결 프로젝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각국 전력망을 `청정과 녹색 방식`으로 연결하는 글로벌 에너지 네트워크 비전을 유엔 총회에서 제시했다.


여기에 북한이 참여하면 이 원대한 구상은 더 가까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대한민국이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를 설립하고 녹색기후기금(GCF)을 유치한 이유 중 하나도 이 같은 동북아 프로젝트를 다자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일명 `그린 데탕트` 전략이다.


김 위원장이 `선행 부문`으로 선택할 것은 자신의 말처럼 핵무기가 아니라 전력 문제의 해결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가장 큰 혜택은 북한에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게 경제와 민생을 살리고 체제를 보장하는 길이다. 이 칼럼만큼은 김 위원장이 직접 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339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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