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6월 일본 후생성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이 1.66명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보다 낮고, 1995년을 피크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면서 일손 부족과 복지비용 증가로 경제 성장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다."
발표 후 그동안 인구 정책을 어떻게 했기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냐는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후생성은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가하면서 결혼 필요를 못 느끼는 독신여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가 여성 단체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6년 후 경제활동인구는 거짓말처럼 줄어들기 시작했고, 1980년대 5% 부근이던 성장률도 연평균 1%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꺼져 가는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재정을 퍼부었으나 인구절벽 앞에서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국가 빚만 잔뜩 키운 결과를 초래했다.
뒤늦게 고령화의 심각성을 인식했지만 때는 늦었다. 지금 일본은 노인인구 비중 26%, 중위연령은 46.5세로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되었다. 아베노믹스니, 마이너스 금리니 추진해 봐야 이미 늙은 사회에 회춘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경우 고령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 2.1명이 1983년에 무너졌지만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산아제한 정책은 1990년대 말까지 유지되었다. 그 결과 2005년에 출산율이 1.1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전되는 나라가 되었다.
현재 노인 비중 13%는 2060년에 40%가 된다. 일본을 제치고 사실상 세계 1위가 된다. 현재 41세인 중위연령은 늙었다는 유럽과 반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이 역시 45년 후에는 58세가 되어 대망의(?) 세계 1위가 된다. 쉽게 말하면 지금 태어난 아이가 사회 중추가 되는 40대 중반에 이르렀을 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늙은 사회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고령화가 먼 훗날의 일만은 아니다. 금년을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 일본의 1996년과 같은 상황이다. 향후 15년간 무려 400만명이 감소한다. 소비 핵심계층인 30~50대 중반 연령대도 230만명이 감소한다. 동기간 중 이 연령층이 우리보다 더 많이 감소하는 나라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뿐이다.
인구는 과학이다. 인구절벽은 '설마'가 아니라 '반드시' 온다. 우리 사회에 고령화 경고가 울린 지 10년이 넘어가지만 그동안 보육예산을 늘린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대책은 없었다. 작년 출산율은 1.24명으로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고령화의 폐해는 앞으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 찾아올 것이다. 소비와 주택판매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저성장은 필연이다. 2060년에는 군입대 연령층이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어 나라를 지킬 인력마저도 반 토막 나게 되어 있다.
우리 미래세대는 참 불쌍하다. 당장 노조 기득권에 막혀 일자리가 정체되어 있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에게 40~50년 후 늙어빠진 사회를 넘겨주는 것은 더 미안하다. 선거철마다 기초노인연금 인상 공약이 나오는데 이런 행태가 지속되면 엄청난 국가 빚까지 물려주게 된다.
지금부터 출산율이 올라가도 그 효과는 수십 년 후에 나타난다.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갔다. 통일이 되면 나아지려나? 2015년 북한은 중위연령 34세, 노인 비중 9.5%로 아직 젊은 편이지만 역시 고령화를 피할 수 없다. 2060년까지 생산가능인구, 소비핵심인구 모두 감소한다.
마지막 남은 카드는 이민을 받아들이는 길이다. 얼마 전 여당 대표가 고령화를 걱정하면서 조선족 이민 이야기를 꺼냈다가 역풍을 맞았다. 그러나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이민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노인연금 같은 포퓰리즘에 넘어가면 절대 안 된다.
[김대기 KDI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9&aid=0003696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