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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과제 김황식 | 2016.04.11 | N0.99

김황식 前 국무총리


지난 3월 8일자 필동통신에서 독일의 빠른 통일 원인을 살펴보고선 거기에서 우리가 배우고 참고해야 할 대목이 무엇인지에 관하여는 뒤로 미루어 두었으므로 오늘은 그 얘기를 마저 하고자 합니다.


독일의 통일 진행과정에 비추어 우리의 여건을 생각하자니 한숨부터 나옵니다. 우선 북한은 동독과는 다른 기이하고 강고한 세습체제를 갖추고 아직도 적화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핵무기까지 개발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자신이 일으킨 전쟁 책임으로 분단되었을 뿐 동·서독 간에 전쟁도 적대적인 국민감정도 없었고, 따라서 제한적이나마 꾸준히 교류협력이 이루어지며 민족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치렀고 이념대립도 심하며 심지어 남남갈등까지 존재합니다. 북한 측의 일관성 없는 태도에 기인하지만, 지속적인 교류협력이나 일관·계승하는 통일정책을 유지하지도 못했습니다. 대립·갈등하는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로 인하여 EU 통합 움직임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과 같은 통일에 우호적인 국제환경을 갖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통일의 길은 요원해보입니다. 통일 논의가 부질없는 것이라고 체념하는 사람도 적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통일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과제입니다. 이해득실의 산술을 뛰어넘는 영역입니다. 독일 통일의 성과에 대하여, 통일 후 동독 주민의 평균수명이 5년 연장되고 그 높던 자살률이 서독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진 것 이상 더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하고 반문하는 독일 교수의 코멘트가 가슴에 남습니다. 남한과 차이 나는 북한 주민의 평균 수명이나 평균 신장 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통일은 우리가 계획한다고, 서두른다고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통일은 이루어진다는 확신과 인내심을 갖고 차분히 준비하는 온 국민의 마음가짐이 절실합니다.


정부는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와 상황을 상정한 치밀한 계획과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북한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독일의 경우 이러한 대비 없이 갑자기 닥친 통일로 인하여 많은 시행착오와 후유증을 겪었습니다. 정부기관은 그 성격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야 합니다. 국방부 등 안보 관련 기관은 북한을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 타도해야 할 세력임을 전제로 삼아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하여 철저히 대비하여야 합니다. 한편 통일부 등은 북한을 민족 동질성 회복과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을 함께 이루어가야 할 세력으로 보고 견제와 협력의 틀 안에서 관리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원칙으로 해나간다면 정권에 따라 통일정책이 달라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단기간 내, 특히 정권 차원의 성과에 급급하여 서두르거나 북한을 필요 이상 자극할 필요도 없습니다. 흡수통일이나 북한체제 붕괴 등의 용어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제규범을 존중하고 명분과 품격을 갖춘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통일에 우호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하여야 합니다. 미우나 고우나 대화의 상대방일 수밖에 없는 북한 당국자와의 대화의 끈은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는 정책과 노력입니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동독 주민의 마음이 서독을 향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러합니다.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노력, 특히 영양실조 질병 등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어린이, 부녀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어느 경우에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통일을 대비하여 국가채무가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은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독일처럼 해야 할 도리를 잔잔하게 해나갈 때 하늘도 우리에게 통일의 기회를 허락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나가면 통일은 어느 날 도둑같이 찾아올 것입니다. 통일의 길은 우선은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이지만 결국은 평화와 번영의 길입니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26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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