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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문턱까지 넘어선 총선공약박재완 | 2016.04.12 | N0.98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장


‘아니면 말고’식 날림 공약, 표심에 영합하는 비겁한 행태
청년 고용 할당제 등은 경제 정체성 흔드는 악성공약
‘흙수저’ 자학에 떠밀린 해법은 소탐대실로 돌아갈 수도
공약등록 검증제 도입해야 할때… 공약에 드는 재정추계도 등록해 경제부담 폐습 고쳐야


내일이면 총선이다. 이번처럼 정책이 실종된 선거도 드물다. 선거구 획정과 공천에 이어 공약도 지각을 면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성껏 달구고 벼린 창의적인 대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 겨우 구색만 갖추거나,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지른 날림 공약이 수두룩하다. 올해 미국 대통령 경선의 ‘최대 피해자는 정책’이라고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정치권의 정책 역량이 부실한 탓도 있다. 하지만 고통과 반발이 따르는 정공법은 피해 가고 표심에만 영합하려는 비겁한 자세가 더 심각한 문제다. 특히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책들은 근원적인 해법보다 다수의 카타르시스를 겨냥하거나 ‘언 발에 오줌 누는’ 땜질 처방이 주류를 이룬다. 


이번 공약들의 공통분모는 ‘큰 정부’와 ‘경제 민주화’로 모아진다. 기초연금, 밭 농업 직불금, 사병 급여와 예비군 훈련수당의 인상,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 등 재정 확대 주장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청년고용 할당제, 기업성과 공유제, 납품단가 연동제, 중소기업 사회복무제, 무역이득 공유제, 청년구직수당,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등은 우리 경제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악성 공약들이다. ‘삼성 전장사업 유치’도 같은 부류다.


이런 약속들이 실현되면, 우리 경제는 실패로 판명 난 ‘사회주의’와 다름없는 틀을 갖추게 될 것이다. 중국 베트남 등 공산권 국가들도 하루가 다르게 시장경제로 옮겨가고 있는데, 우리만 시대 흐름에 역주행하자는 것인가.


경제가 어려운 데다 부문 간 격차와 대물림에 따른 박탈감이 커지는 만큼 정치권이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을 나무랄 순 없다. 그러나 우린 이런 양극화의 추세와 원인에 관한 진단조차 겉핥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 상황에서 ‘흙수저’와 같은 자학에 떠밀려 남발된 과격한 해법들은 소탐대실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여러 연구들을 집약하면, 우리의 소득 분배 상태는 다른 나라들에 견주어 나쁜 편이 아니다. 특히 계층의 수직 이동성을 가늠하는 ‘세대 간 소득탄력성’은 오히려 양호한 편에 속한다. 게다가 2010년 이후 분배 상태가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기도 하다. 다만 세계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해 최상위 계층으로 소득 편중이 심화되는 현상은 걱정스럽다. 또 최근엔 학력과 사회경제 지위의 대물림이 고착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경제 민주화’의 핵심 논거인 ‘노동소득 분배율’의 하락 추세는 2011년부터 상승 흐름으로 반전됐다. 더욱이 연금을 비롯한 ‘이전지출’과 비(非)임금 보상이 늘어나면서 실제와 달리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아지는 것처럼 착시를 유발한다는 반론도 설득력을 지닌다. 정부의 소득 재분배 기능은 여전히 선진국보다 취약하지만, 뒤늦게 도입한 국민연금제도가 성숙되고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본격화하면 차츰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양극화 여부의 판별 못지않게 그 원인을 찾는 일도 절실하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 때문인지, 지식 기술 역량의 격차 또는 규제로 파생된 곳곳의 지대(地代) 때문인지 가려내야 한다. 진단이 잘못되면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없다. 대기업을 때리고 중소기업을 감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노동소득 분배율이 등락하는 까닭도 짚어내지 못한 채 ‘소득 주도 성장’이나 ‘가계소득 증대’를 들먹이는 것은 성급하다.


뉴질랜드에선 정당이 선거공약을 등록하면 재무부가 그 비용을 추계한 보고서를 선거 전에 내놓는다. 우리도 이런 ‘공약 검증제’를 도입할 때가 됐다. 각 정당은 선거 3개월 전까지 중앙선관위에 공약을 등록하고, 이후엔 새 공약을 내놓거나 바꾸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에 임박해 불쑥 내놓거나 서로 베끼기 바쁜 어설픈 공약 대신 오래 숙성된 공약이 나올 수 있다.

 

아울러 공약 이행의 소요 비용과 재원 마련 대책을 담은 재정 추계도 함께 등록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뒤 중앙선관위는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꾸려 재정 추계를 검증한 결과를 선거 한 달 전까지 공표해 유권자의 선택을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차변과 대변이 다른 장밋빛 공약을 줄이고, 선거 뒤 무리한 공약을 이행하느라 경제에 부담을 지우는 폐습을 바로잡는 지름길이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60412/77532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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