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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命運을 놓고 협상하는 정권은 없다김태효 | 2016.03.14 | N0.97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가장 옳고 빠른 통일정책은 北에 개혁 기운 스며들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하는 것
북녘 2400만 동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사명감을 가져야


세상에 북한 전문가가 너무 많다. 국민은 혼란스럽다. 백성이 혼연일체로 마음을 모으면 못 할 일이 없건만 북한 문제에 관한 그럴듯한 주장들이 편을 가르고 당국자들을 주저하게 한다. 그중 하나가 북한은 아무리 제재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주장이다. 북한 경제는 어차피 폐쇄적이고 중국은 비협조적인데, 유엔이 어떤 조치를 취하든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무슨 독자적인 제재안을 추가하든 이제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북한 정권은 끄떡없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북한 핵 문제가 생긴 뒤 25년간 한국에서 누가 정권을 잡아 어떤 대북 정책을 폈건 결과가 같으니 현재의 북한을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해설이 이어진다. 나아가서는 붕괴하지도 않을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북한 정권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여 그들이 우리에게 갖는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줘야 한다는 정책 논리로 귀결된다.


세상의 어느 정권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권력에 위험을 초래할 만한 이슈를 놓고 협상하려 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들이 희구하는 권력은 그들이 인민의 삶을 보다 안전하고 풍요롭게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공공성을 지닌다고 간주된다. 70년의 기간에 걸쳐 3부자가 절대 권력을 독점하면서 이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주민에게 고난의 행군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북녘의 2400만 동포가 그러한 고통에서 하루속히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어떤 방도를 쓰든 할당된 자금을 마련해 평양에 보내야 하는 북한의 재외 공관, 새장처럼 갇혀 지내며 일하고 임금은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는 해외 파견 근로자와 종업원들은 북한 인권유린의 작은 단면에 불과하다.


북한 정권에 돈과 쌀을 줄 때는 이것이 군사력과 배급제를 강화하는 데 쓰임으로 인해 북한 주민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고 장마당과 민간경제는 위축됐다. 이러한 전략 물자 공급을 줄이는 대신 생활 물자와 한류 콘텐츠를 공급하는 데 더 치중할 때는 시장과 민간 영역의 자율성이 확대됐다. 북한 당국이 핵과 미사일에 의존하는 권력 이외의 다른 어떤 권력도 위험하다고 믿을진대, 남는 차선책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군사 기술과 통치 자금의 루트를 차단하는 것이다. 갖가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대외 협상, 금융거래, 물자 유통 방식을 은닉해 온 북한이지만 한·미 양국이 우방들과 협조하여 차단한 북한의 대외 군사 교류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 북한은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뿐 아니라 이의 운용 시스템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도 상당한 비용을 들여야 한다. 자동차를 5년 이상 타면 기름값과 유지비가 차량 구입비보다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충분하진 않지만 중국도 북한 선박의 출입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러시아는 건설현장의 불법 체류 북한 노동자들을 추방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다. 앞으로의 관건은 대북 제재에 관한 국제 공조가 북한의 전략 물자 확보 차단에 효과적으로 집중되도록 하고, 북한의 장마당을 활성화하고 주민들이 바깥세상을 접하는 데 필요한 생활 물자와 정보의 공급은 더욱 확대되도록 효과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북한 민간 경제의 어려움은 공급보다는 분배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매년 우상숭배 조형물 건립과 사회 통제에 지출하는 돈이 10억달러를 넘는다. 핵·미사일 등 핵심 군사력 프로그램 운용에도 비슷한 규모의 비용이 투입된다. 20억달러면 북한 연간 수출액의 3분의 2에 해당하고 북한 사회의 만성적인 식량난을 거뜬히 치유할 수도 있다.


북한 권력자의 생각이 요지부동인 이상 중국과 미얀마처럼 개혁·개방의 기운이 북한 사회 전반에 스며들도록 창의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러한 평소의 정책이 가장 올바르고도 빠른 통일정책이다. 통일이 언제 올지 모른다고 하여 이를 방치하거나 오히려 늦추는 처방을 주장한다면 옳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대북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다. 국회가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는 데 각기 15년과 11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데 치열하지 못했고, 북한 주민을 동포이자 존엄한 인간으로서 보호함에 있어 마음이 충분히 따뜻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국가의 기밀과 통신을 탈취하고 사회질서를 허물려는 북한의 시도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사이버 테러 대응 문제가 시험대에 올랐다.


북한을 올바른 길로 변화시키고 통일 기반을 잘 구축하려면 우선 대북 정책의 목표와 방도가 바로 서야 한다. 그릇된 길로 열정을 발산하면 마음이 아무리 뜨거워도 북한 동포들을 오히려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13/20160313020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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