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에 여야 모두 공천 내분… 민주화 이후 최악
투명한 시스템 공천, 이번에도 물 건너가… 차라리 알파고에…
20대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각 당 공천 작업도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은 이번에도 물 건너가고 말았다. 상향식 국민경선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설로 떠돌던 살생부가 현실화됐다.
비례대표 공모, 여론조사 비중 확대, 정치 신인 가점 부여 등 이번 공천이 진일보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비난을 의식해 현역에게 유리한 상향식 공천만 고집하긴 힘들었을 것이라는 사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야 모두 ‘우선 추천’ ‘전략 지역’ 또는 ‘경선 배제’ 명목의 물갈이 곳곳에 ‘인치(人治)’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느닷없이 등장한 특정인이 원칙이나 명분도 밝히지 않고 휘두른 칼날은 정당의 존립 근거를 뿌리째 흔들었다. ‘정무적 판단’이라는 해명도 아리송하지만, 국민 눈높이나 인물 경쟁력에 비추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인선이 적지 않다.
다음 주 비례대표 선정도 공공기관장 인선처럼 ‘무늬만 공모’에 그치고 이미 낙점된 인사들의 통과의례가 될 듯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공천이라는 평을 들을 법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이세돌과 겨뤘던 ‘알파고’에 공천을 맡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총선 결과를 예단할 순 없지만, 두 가지 걱정이 앞선다. 첫째,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들이 정치판에 뛰어들기를 꺼려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 후유증이 지속될 것이다. 짬짜미 공천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파생된 우리 정치의 ‘시장 실패’는 두고두고 국력과 민생을 갉아먹게 될 것이다.
둘째, 소모적인 정쟁에 몰두하는 정치권의 고질병도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공천에 따라 계파별 명암이 크게 엇갈렸다. ‘진박(眞朴)’ 후보들이 약진한 반면 ‘비박(非朴)계’는 대거 탈락했다. 수도권 ‘친노(親盧)파’도 내상을 입었지만, ‘친문(親文)’ 진영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이런 ‘뺄셈 정치’로 인해 새누리당은 지금보다 유권자 스펙트럼의 더 오른쪽으로 참호를 옮기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운데로 다가갔지만 그 대신 중원을 노리던 국민의당 입지가 잠식돼 기대했던 3당 구도보다 정치지형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절충과 타협의 여지가 좁아져 대치 정국이 교착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그러잖아도 최근 지구촌은 원리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대선만 해도 중위 유권자의 성향과 동떨어진 ‘아웃사이더’ 돌풍이 심상찮다. 백인 저소득층 불만을 토양으로 삼는 50명 남짓 티파티(Tea Party·세금 감시 운동을 벌이는 보수단체)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국정이 답보 상태다. 지난해 유럽연합(EU) 총선에선 극우와 극좌 그룹이 선전한 대신 중도파는 의석이 쪼그라들었다. 영국의 EU 탈퇴, 스코틀랜드와 스페인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 움직임 등 원심력이 가속되는 추세다.
초강경 노선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활개를 치고 있는 중동은 시리아 내전 등을 둘러싸고 사분오열되어 있다. 동아시아, 북아프리카, 중남미의 사정도 엇비슷하다. 게다가 주요 20개국(G20) 회의와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글로벌 공조 체제도 눈에 띄게 퇴색됐다. 자칫 제1차 세계대전 후 대공황을 맞아 주요국들이 제각각 대응하다 위기를 키운 사례가 재연될 수도 있다.
잘못된 공천의 후과(後果)를 줄이려면 유권자가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억울한 낙천자는 구제해야 앞으로 괜찮은 신인들이 정치에 입문할 뜻을 세울 수 있다. 나아가 ‘아니면 말고’ 식 침소봉대, 무책임한 선동이나 ‘닥치고 반대’의 이력이 화려한 후보는 응징해서 ‘식물 국회’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08년 온 나라를 마비시킨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운동이 그 전형이다. 그때 앞장섰던 정치인 상당수는 이번에도 출마한다. 섬뜩한 ‘뇌 송송, 구멍 탁’을 비롯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큰일 날 것처럼 떠들던 이들이다. 그로부터 8년 가까이 지났건만,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안함 폭침 조작설은 또 어떤가. 국제합동조사단이 명명백백한 증거물까지 내놓았는데도 온갖 억측을 증폭시킨 정치인이 적지 않다. 다시 이들을 뽑는다면, 선진 국회의 길은 요원할 것이다.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장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List/ColumnDA/3/040106/20160319/770831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