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현 동국대 석좌교수
동양과 서양을 비교해보면 중요한 발명품인 숫자, 화약, 나침반은 동양에서 유래하지만 정작 높은 수준으로 응용 발전시킨 곳은 서양이다. 인류 문명 4대 발상지에 유럽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16세기부터 발달한 항해술, 화약무기를 들고 다른 대륙들을 정복했다.
19세기 중반부터 중화문화권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본은 예외였다. 16세기부터 포르투갈과 교류했고 네덜란드 상관을 나가사키에 두고 유럽 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작은 것을 좋아한다 해서 축소지향의 문화라고 정의한 학자도 있지만 본질을 꿰뚫어 본 탁견은 아니다. 서양화와 동양화를 비교해 보면 서양화는 디테일에 많은 신경을 쓰지만 동양화는 특징을 대범하게 표현한다. 일본이 유럽 문화 영향을 받아 디테일에 강한 것이지, 작은 것을 선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화약무기의 발전 과정도 흥미롭다. 유럽은 개인 화기를 개발하는 데 상대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동양은 대포 구경을 늘리는 일에 더 신경을 썼다.
유럽은 나아가 탄약 장전을 쉽게 빨리 하는 방식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화약무기 살상 능력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전쟁이 많았던 유럽 역사에도 기인하지만 디테일을 중시하는 문화의 소산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하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인이 휴대형 대포인 소총을 운용하는 게 전투 효율을 높일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 문명과 동양 문명 수준을 가른 것은 미적분의 발견이 서양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미적분을 모르면 우주선,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비행 궤적을 계산해낼 수 없다. 미적분은 모든 것을 작게 나눠 자세히 들여다보는 디테일 중시 문화의 소산이다.
주사급 장관, 장관급 사무관이라는 별칭이 존재한다. 주사급 장관은 불명예스러운 호칭이나 장관급 사무관은 일종의 영웅 칭호다. 생각해 보면 반대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대범한 과장, 사무관들이 디테일을 챙기지 않으니까 장관이 나선 게 아닐까? 사무관은 사실, 상황, 통계수치의 정확성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꼼꼼하게 따지는 사람을 인재로 인정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허허대며 이도 저도 다 좋다`는 무골호인은 사절해야 하고, 두주불사 마당발도 시대착오형 지도자상이라는 데 공감해야 한다. 마당발로 뛰어다니며 말술을 마시는 사람이 책 한 권 옳게 읽겠는가? 어떤 이슈를 깊이 고찰해볼 시간이 있겠는가?
디테일에 대한 이해 없이 적당한 타협이나 하려 든다면 현대형 지도자가 아니다. 지도자뿐 아니라 사회 모든 계층에서 대범함이 더 이상 덕목이 되어선 안 된다.
세월호 비극, 메르스 소동도 불필요한 대범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선박 조난 현장으로 출동하면서 구명 로프와 조끼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이유를 개인의 무능함에서 찾으면 같은 실책이 반복될 것이다.
디테일에 신경 쓰는 직장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메르스 초기 대응 실패도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 병실 구조, 환자 동선 등 디테일을 경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잘게 여러 개로 끊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에 문제가 있었다.
한국이 기로에 서 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 `혁신 없는 혁신을 향한 정치 타령`이 아니라 `디테일 중시 문화 정착`이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연구개발을 위해 잘게 끊어서 세세한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비로소 신기술이 탄생한다. 고도의 머리싸움이 필요한 국방 외교 전략을 국민 눈높이에 맞춰 대범하게 하면 민족 생존도 보장하기 어렵다.
유사시 일본군이 한반도에 상륙한다는데 "우리 허락 없이 안 된다"는 대범한 말씀만 할 게 아니라, 국군 전력이 일본군이 업신여기지 못할 만큼 강한지 국민에게 실상을 알리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치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4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