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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경제, 삼성마저 흔들리나 박재완 | 2015.07.13 | N0.51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행정학, 前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또 낮췄다. 수출과 투자가 부진해 산업생산이 뒷걸음질을 치고, 청년실업률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과 42년 만의 가뭄도 악재다. 온건 성향 한국노총마저 18년 만에 총파업을 결의한 데다 포스코 수사 장기화 등으로 기업 활동은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대외 경제 여건도 녹록지 않다. 중국 증권시장 폭락,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과 미국 기준금리 인상 예고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고, 또 다른 헤지펀드는 삼성정밀화학 지분을 5%나 사들였다고 한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에서 기업 사냥을 끝낸 투기자본들이 경영권 방어 장치가 취약한 우리 대기업들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는 진단이 예사롭지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 지도자들은 정책 논쟁보다 주도권 다툼에 여념이 없다. 힘을 모아야 할 정부와 여당의 불협화음이 드러나는가 하면, 야당도 집안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다들 국익과 민생을 내세우지만, 속내에는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공학이 자리 잡고 있음을 국민이 모른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물론 기준금리를 내리고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등 정부도 경기에 불씨를 지피려는 노력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확장 정책만으론 경제를 살리기 어렵다. 누구도 당장은 피해를 입지 않지만, 확장정책은 체질 개선을 늦추고 거품을 키우며 부담을 후대로 떠넘기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성과가 더디게 나타나고 저항이 따르더라도 구조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야 기초체력이 튼튼해진다. 경쟁을 촉진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세계 표준보다 엄격한 과잉·획일 규제, 서비스업의 높은 문턱과 울타리, 정규직 중심의 경직된 고용, 시장수요와 동떨어진 고등교육과 직업훈련, 출연연구기관의 느슨한 지배구조와 유인체계 등을 바꿔야 한다.

정부 지원이 오히려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사례도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에 기대 연명하는 `좀비기업`과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길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줄여야 한다. 정부가 지원한 중소기업 연구개발(R&D) 과제에 대한 개발 성공률이 96%에 이른다면 무언가 잘못됐다는 반증이 아닐까.

과도한 정책금융과 철 지난 금산분리 틀에 갇힌 금융산업도 정부 보증과 담보에 의존하다 보니 신용 분석과 위험관리 역량이 답보 상태다. 벤처인증기업 중 95%가 연대보증을 제출하고서야 신용보증기금 등 인증을 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따지고 보면 단기 차익을 겨냥한 `알 박기 펀드`로 악명 높은 엘리엇의 최근 공세도 역사가 일천한 우리 자본시장의 낡은 규율이 단초를 제공했다. 일률적인 주주평등원칙 대신에, 대부분 선진국처럼 정부가 주식 보유 기간이나 비율에 따른 차등의결권을 허용했더라면 파장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경영권 위협에 취약한 우리 대기업의 복잡한 지배구조와 다단계 순환출자가 더 일찍 정비됐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지난 10일 국민연금이 삼성그룹 합병안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지만 해외 투기자본 때문에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합병이 무산돼선 안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다른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과 사업구조 조정도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된 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하느라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으로 투자 여력을 소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는 별개로, 국민연금과 기관투자가들이 우리 자본시장의 저력이 만만치 않음을 `벌처 펀드`에 각인시켰으면 좋겠다. 특히 국부펀드나 다름없는 국민연금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갖춰질 때까지 투기자본으로부터 우리 기업들을 지키는 백기사를 자임해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666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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