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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더라도 ‘개혁型 성장’이 답이다박재완 | 2015.06.04 | N0.46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행정학, 前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가 기대만큼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택과 주식 거래가 크게 늘어나는 등 자산시장이 나아지는 기미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수출과 투자가 부진해 산업 생산은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수출은 감소 폭이 차츰 확대되는 추세다. 그나마 소비는 소폭 늘었지만, 매월 등락을 거듭하고 있어 불안하다. 무엇보다 청년실업률이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해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진단과 저런 처방이 쏟아지지만, 아직 사회적 공감대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확장정책과 혁신을 조합한 ‘창조경제’를 내세우지만, 야당은 임금을 획기적으로 올리는 등의 ‘소득 주도 성장론’으로 맞서고 있다. 공정한 시장질서와 분배·조세 체계가 성장의 전제 조건이라는 ‘공정성장론’이나 심지어 복지가 성장을 촉진한다는 ‘복지성장론’까지 등장했다.


그 밖에 일본처럼 우리도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을 채택하고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내리자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재정 여력이 있는 만큼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등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는 주장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소득 주도 성장론’은 동의 반복이거나 인과관계를 무리하게 설정한 주장처럼 보인다. 성장과 함께 가계소득의 비중이 늘어나도록 힘쓰자는 뜻이라면, 굳이 ‘주도’라고 덧붙여 오해를 살 필요는 없겠다. 그게 아니라, 가계소득을 늘려서 성장을 하겠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에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하면 일자리와 가계소득이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임금을 눈에 띄게 올려줄 여력이 있는 기업이 얼마나 있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일부 대기업이 임금을 올리면 중소기업과 격차가 더 벌어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분석에 따르면, 최근 중국 정부가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렸기 때문에 일자리 증가 폭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최근 수년간 미국의 고용 유연성이 떨어져 생산성과 일자리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특히 청년과 저학력 근로자가 큰 타격을 입었다니,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일이다.


둘째, ‘공정성장론’은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던진 고전적인 딜레마, 즉 효율과 형평, 성장과 분배의 상충관계를 완화하기에는 적용 범위가 너무 좁다. ‘복지성장론’은 20세기 초중반 미국 보스턴 시장의 이름을 딴 이른바 ‘컬리 효과’가 우려된다. 네 차례나 뽑힐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제임스 컬리 시장이 가난한 아일랜드계를 위한 소모성 복지를 크게 늘리자 부유층들은 썰물처럼 도시를 빠져나가 버렸다. 지금 막바지 부채 협상을 벌이고 있는 그리스도 사정이 비슷하다. 집권 시리자당의 복지 노선이 불러올 실업난과 저임금을 예견하고, 교수·과학자·의사·은행원 등 전문 직업인이 20만 명이나 해외로 떠났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셋째, 확장정책은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을 어렵게 만든다. 지난 4월 국제결제은행(BIS) 허브 해넌 사무차장은 ‘양적완화’가 잉태한 5가지 ‘D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부채 감축 애로, 구조 개혁 방해, 자원 배분 왜곡, 금융업 혼란, 중앙은행 역할에 대한 환상 등이 그것들이다. 따라서 확장정책은 정말 어려울 때에만 일시적으로, 적기에, 목표를 잘 겨냥해서 맞춤형으로 시행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단기 충격이나 경기 순환에서 비롯됐다면, 확장정책으로 대응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근 저성장 기조는 고령화와 과잉 규제 등 서서히 진행되거나 오랫동안 쌓여온 복합적·구조적인 측면에 주로 기인한다. 따라서 정책의 무게중심을 단기적 수요 촉진이나 경기 대응보다는 근원적인 구조조정과 체질 강화에 둬야 한다.


경제를 손쉽게 살리는 요술 방망이나 지름길은 없다. 개혁은 고통스럽지만, 고통 없이 얻을 수 없다. 성장통은 불가피하다. 바람직한 성장전략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개혁 주도형 성장’이라고 할까. 공공·노동·교육·금융 말고도 손봐야 할 사안은 수두룩하다. 정부와 국회, 언론·학계와 시민단체를 조율하는 창도(advocacy) 리더십이 절실하다.


사안별로 차분히 따져야 할 국회의 시행령 수정 요구를 놓고 가정을 전제로 티격태격할 시간도 없고 실익도 없다.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060401033011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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