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성균관대 교수·행정학, 前 기획재정부 장관
박재완 교수, 그의 출발은 공무원이었다. 행정고시를 거쳐 감사원과 재무부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미국 유학(하버드대)을 갔고 거기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정책학). 그리고 귀국 후 청와대에서 잠시 근무하다 성균관대 교수(행정학)가 되었다.
교수가 되었지만 세상은 일과 공부 모두에 능한 그를 그냥 교수로만 두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기획조정처장 등으로, 또 밖에서는 경실련 정책위원장 등으로 ‘차출’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집권 초기인 2003년, 이 대담을 진행하는 김병준을 통해 그를 고위직에 등용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이 ‘심부름꾼’이 신통치 않아 일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러던 그는 2004년 그가 존경하는 한 선배의 권유로 전국구 국회의원(한나라당)이 되었다. 그리고 이명박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정무수석을 맡았고, 이후 국정기획수석과 고용노동부장관, 그리고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냈다.
지금 다시 학교로 돌아온 그는 연구와 강의에 열심이다. 민간 싱크탱크인 한국선진화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막 수업을 끝낸 그를 그의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양극화 문제와 그와 관련된 재정 문제 등을 물었다.
▷빈부 격차 추세, 어떻게 보아야 하나?
김병준: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차이가 너무 난다. 소득을 보면 지니계수로는 0.3 정도로 OECD 평균 수준이라 한다. 하지만 느끼기에 정말 심한 것 같다.
박재완: 지니계수도 그렇고 소득 5분위 배율 등의 다른 분배 지표들도 그렇다. 모두 불완전한 척도이고 개선의 여지도 있다. 그래도 추세를 읽는 데는 도움이 되는데, 문제는 이 추세가 1990년대 초반부터 한 20년 동안 계속 악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김병준: 앞으로 계속 그럴까?
박재완: 우리의 경우 2010년 이후 조금씩 나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김병준: 그런가?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고들 말한다.
박재완: 이해된다. 체감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여전하다. 신분 상승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통계상, 지난 4년 연속 분배 지표가 개선되어 왔다.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등 복지 혜택이 늘어난 데다 저금리와 주식시장 침체로 부유층의 자산 소득 증가가 그 전보다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병준: 지금은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은 돈 있는 사람이 돈을 더 벌지 않겠나? <21세기 자본>의 저자 피케티(Piketty)도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웃돌아 자본가들에게 점점 더 많은 부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한다.
박재완: 꼭 그럴까? 브라운대학의 와일(Weil)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인적자본, 즉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도 자본이고 노후의 연금 청구권도 자본이다. 피케티의 분석에서 빠진 이런 자본은 지난 300년 동안 그 비중이 급증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평한 방향으로 분배가 이루어져 왔다.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의 수도 늘어났고, 연금청구권도 거의 제로 상태에서 지금 수준으로 늘어나지 않았나.
김병준: 공평한 방향으로 흐르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역시 피부로 느끼는 것은 그 반대이다.
박재완: 상대 비교 성향이 강화된 것도 한 원인이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학력 격차가 심했다. 그리고 적게 배운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이 잘사는 것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아니다. 다들 대학을 나왔다. 소득 격차를 수용하지 못한다. 이를 터널 효과라고 부른다. 차가 밀려도 옆 차로보다 빨리 가면 만족하고, 그 반대면 짜증을 내는 성향을 빗댄 용어다.
▷분배 문제를 푸는 방법
김병준: 어찌 되었건 주관적인 판단이나 느낌도 중요한 것 아니겠나. 또 실제로 복지 등 국가재정으로 이 문제를 완화시키라는 요구가 넘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것 같아 걱정이다.
박재완: 선진국은 194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 즉 고도 성장기에 복지를 확대했다. 세금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 큰, 다시 말해 담세력이 높을 때였다. 그런데 우리는 저성장 기조 속에 복지를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 당연히 담세력과 연령별 인구 구조 변화 등을 감안해서 치밀하고 알뜰하게 설계해야 한다.
김병준: 세금과 복지로 다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박재완: 분배 문제를 복지로 다 풀 수는 없다.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갖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장과 분배는 동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고도성장을 할 때 분배 상태도 좋아졌다.
김병준: 성장한다고 일자리가 늘어나겠나? 그야말로 ‘고용 없는 성장’ 속에 일자리가 더 줄어들거나 제자리걸음하지 않겠나?
박재완: 딜레마다. 기술 진보가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 그래도 그 길로 가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기계파괴운동을 따를 수는 없다. 혁신은 생산성, 소득, 여가를 늘리고 물가를 낮춰 구매력을 키우며 일자리를 만든다. 특히 치열한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혁신을 게을리하면 도태되고 만다. 고등교육체계를 개방형으로 판 갈이하고 출연연구기관의 지배구조와 유인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또 노사가 협력해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김병준: 낙오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너도나도 영세 자영업으로 몰리면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자영업 생태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박재완: 그 점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도 혁신역량을 갖추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도서정가제를 한다고 동네 서점이 아마존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 대항할 수 있겠나. 이들이 업종을 전환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든가, 아니면 ICT 등과 연계된 경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김병준: 평생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인가?
박재완: 그렇다. 우리의 평생교육은 OECD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된다. 사실 대학교육도 바뀌면 좋겠다. 전공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학교는 1, 2년만 다닌 뒤 취업을 하고, 그 뒤 4, 5년 자신에게 필요한 과목을 온라인으로 이수해서 졸업하게 하면 어떨까? 그러면 첫 직장 갖는 시기도 앞당기고 공부와 산업현장의 수요를 연계할 수도 있다.
김병준: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생각보다 저항이 강하더라.
박재완: 교육 공급자인 교사와 교수가 먼저 변해야 하는데 왜 저항이 없겠나. 현장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과목이나 강의는 사라질 것이고, 그런 가능성 때문에 교사와 교수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순히 소통을 하는 리더십을 넘어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창도(唱導`advocacy`어떤 일을 앞장서서 주장하고 부르짖어 사람들을 이끌어 나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김병준: 이런 평생교육만 해도 엄청난 돈이 필요할 것이다.
박재완: 그래서 OECD는 일반근로자의 평생교육 비용은 기업이 부담하고 영세 자영업자 등은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하고 있다.
▷국가부채와 가계부채
김병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정부 역시 많은 돈을 써야 할 것이다. 세금을 걷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돈 들어갈 일은 이렇게 많다. 그러다 보니 나랏빚이 늘고 있는데 우리의 국가부채 상황은 괜찮나?
박재완: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35% 수준이다. 비영리 공공기관을 포함해도 40% 정도로 다른 나라보다 낮다. 하지만 남북통일에 소요될 비용과 압축 고령화 등을 생각하면 30%가 마지노선이라 생각한다. 최근 증가 속도가 연 7%로 가파른 점도 걱정이다.
김병준: 35%는 정부가 발표하는 숫자일 뿐 그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주장도 있다.
박재완: 공기업 부채 등을 다 합치면 그렇다는 건데, 국제기준에 따르면 공기업은 정부에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공기업도 공공 부문에는 포함되므로 빚이 지나치게 늘어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김병준: 앞서 남북통일에 소요될 비용을 이야기했는데 우리 재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 같나?
박재완: 독일의 경우, 통일 전에 서독의 국가부채는 GDP의 19%였다. 그것이 통일 후 한때 100%를 넘었다가 지금은 70% 선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이미 35%다. 여기에 동독과 서독은 1인당 소득격차가 2.3배 수준이었는데, 우리는 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본다.
김병준: 어떻게 해야 하나?
박재완: 지출을 합리적으로 줄이고 성장률도 올려야 한다. 빚을 늘리는 것은 무책임하고 세금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법인세 인상은 자칫 기업들을 밖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선진국들도 1980년대 이후엔 세금을 내리고 복지를 줄이는 추세다. 그리고 부가가치세 인상은 통일을 대비해 아껴두는 것이 좋겠다.
김병준: 그래도 더 거둔다면 어디를 손댈 수 있나?
박재완: 소득세는 부담을 좀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최고세율을 더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 최고세율은 41.8%로 OECD 최고세율 평균에 근접해 있어 더 올리기가 쉽지 않다. 세율 인상보다는 비과세 부분을 줄여서 세원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영업자의 40%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데, 이 비율도 20% 정도로 낮춰야 한다.
김병준: 그 외에 또 다른 부분은 없나?
박재완: 환경적인 요소, 이를테면 화석연료에 대한 세금을 늘려야 한다. 우리는 자원이 없으면서도 에너지를 많이 쓴다. 이를 바로잡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김병준: 산업에 충격이 가지 않겠나?
박재완: 단기적으로는 충격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녹색기술 혁신과 보급을 촉발할 것이다. 세계은행의 한 보고서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면 자칫 ‘갈색 빈곤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느 날 내연기관 자동차가 몰락하면, 자동차 제조사의 주주와 근로자, 그리고 도시 전체가 갑자기 어려움에 봉착한다는 뜻이다.
김병준: 끝으로 짧게나마 가계부채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벌써 1천조원 수준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140%로 금융위기 직전의 미국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나?
박재완: 질적인 측면에서 미국과는 다르다. 우선 고소득층에 부채가 집중되어 있고, 담보 등 대응 자산이 확보되어 있어 경착륙할 가능성이 적다. 그리고 긍정적인 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단기 부채가 장기 부채로, 변동금리가 고정금리로, 비은행권 부채가 은행권 부채로 전환되고 있다. 다만 부채의 규모나 소득 대비 비율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잘 관리해야 한다.
김병준: 미국에서 금리를 올리는 등 외부요인이 작용되면 큰일 나지 않겠나?
박재완: 그럴 수 있다. 비우량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 생활비가 모자라 돈을 꾼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 비은행권 부채가 많은 사람 등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시스템 위기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가계부채는 날계란과 같다. 꽉 쥐면 깨지고 느슨하게 쥐어도 깨져서 흘러내린다. 지나친 걱정도 지나친 낙관도 금물이다.
김병준: 어려운 과제들이다. 양극화도 극복해야 하고, 세제 개혁에 방만한 지출도 줄여야 하고, 복지에 대한 국민적 기대수준도 낮추어야 하고, 통일 비용 걱정도 해야 하고, 그야말로 끝이 없다. 이 일을 우리가 해낼 수 있겠나? 더욱이 이렇게 낮은 정치 수준으로.
박재완: 다시 한 번 창도의 리더십 이야기를 하고 싶다. 탁견과 함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리더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또 그런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 학계와 민간 싱크탱크 그리고 언론 등이 이 점에서 더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김병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선진화재단이 정책 토론회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박재완: 일주일에 한 번씩 국회 의원회관에서 하고 있다.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출처> 매일신문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8269&yy=2015#axzz3Wa58xt8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