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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하락 그 이후…역사의 교훈 김대기 | 2015.04.20 | N0.32

김대기 KDI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유가가 작년 9월 이후 떨어지더니 급기야 반 토막 났다. 향후 유가는 어떻게 될까? 최근 세계 4위 원유 보유국인 이란의 시장 복귀로 유가가 더 하락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한 것 같다. 반면 유가 하락 시 생산원가가 높은 셰일가스 생산이 줄어들면서 유가가 다시 오를 것으로 전망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들도 그 상한선을 대략 60달러대로 보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향후 몇 년간은 저유가 시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진단한다.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거에도 유가가 이처럼 폭락한 적이 있었다. 30년 전인 1985년 11월 배럴당 30달러 하던 유가가 이듬해 3월 10달러가 됐다. 5개월 만에 67%가 떨어진 것이다. 1980년대 초 제2차 석유 파동 이후 에너지 절약이 꾸준히 이뤄진 데다 북해에서 유전이 개발되면서 공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후 유가가 30달러 이상 수준으로 복귀하기까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당시 유가가 폭락하면서 세계는 유례없는 호시절을 맞이했다. 1980년대 후반 세계는 연평균 4%에 가까운 성장을 했다. 유럽 국가들은 성장률이 1980년대 전반 1.7%에서 후반 3.4%로 배로 뛰었다. 미국도 3%대 중반의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했다. 세계 경제 호조는 저유가가 지속된 1990년대에도 계속됐다. 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실업률이 1957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다. 재정적자도 줄어들어 1990년대 말에는 국채 시장에서 정부가 자금 수요자에서 공급자로 바뀌었다. 무려 70년 만의 일이다. 중국은 고성장 질주를 하고, 독일은 통일됐으며, 유럽은 하나가 됐다. 가히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그런데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그렇게 좋던 1990년대에도 고통을 받는 나라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일본, 그리고 한국이다. 1991년 옛 소련은 사회주의 경제 실패로 재정이 쇠약한 상태에서 미국과 군비 경쟁을 벌이다가 해체됐다. 그 적통을 이어받은 러시아는 재정 파탄으로 무너진 루블화를 살리기 위해 화폐 개혁, 예금 동결 등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1998년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붕괴됐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억하리라. 1990년대 중반 한국 유흥가에 러시아 여자들이 많이 출현한 것을. 그때가 러시아가 가장 힘들 때였다.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 패자는 일본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두 배 절상되자 경기 침체를 염려한 정부가 저금리로 대응하다가 거품이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됐다. 이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고령화의 그늘이 본격화하기 시작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 치중한 나머지 오늘날 세계 최대 부채국가가 됐다.


한국의 경우 시작은 창대했다. 유가 하락과 함께 저금리, 엔고까지 겹친 소위 3저 시대를 맞이해 1980년대 후반 세칭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호황을 체력을 튼튼히 하는 데 사용하지 못하고 흥청망청 써버렸다. 사상 처음 경상수지 흑자기를 맞이해서 마치 선진국이 된 양 국민연금, 전 국민 건강보험, 최저임금제 등 굵직한 복지 시책을 한꺼번에 추진했다. 민주화 열풍이 불면서 연일 노사분규가 일어나고 그 결과 10년간 임금이 네 배가 됐다. 현재 경직된 노동법 체계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중소기업들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대기업들은 경제 자율화 분위기를 틈타 석유화학, 자동차, 항공 산업 등으로 업무 영역을 마구 늘렸다. 대마불사의 신념으로. 그리고 외환위기를 맞이했다. 1987년 민주화선언 이후 딱 10년 만이다.


이제 다시 저유가 시대가 도래했다.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나면서 세계 경제 판도는 어떤 형태로든 또다시 확 바뀔 것이다. 이번에도 즐거움을 누릴 나라가 있는 반면 고난에 빠질 나라가 있을 것이다. 한국은 과연 어디에 속하게 될까? 최근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지 싶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372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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