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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전환대출 성공이 불편한 이유이종화 | 2015.04.12 | N0.31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 규모와 무역 규모 8위를 자랑한다. 세계경제포럼이 최근 발표한 국제 경쟁력지수에서 한국의 종합 순위는 144개국 중 26위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발전은 한참 더 뒤처진다. 세계 80위로 필리핀(49위), 중국(54위)은 물론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꾸준히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강력한 구조조정과 규제 선진화를 추진했다. 지난 2년 동안만 해도 금융감독 체계 선진화, 금융업 경쟁력 강화, 금융규제 완화, 창조 금융 육성 등 대책들이 계속 쏟아졌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소유·지배 구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관계, 경영의 투명성, 위험관리 능력, 금융소비자 보호, 감독 시스템 구축 등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늘어나는 가계 부채와 그림자 금융,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에 취약한 구조도 꾸준히 개선해야 한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을 시장에만 맡겨 둘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99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을 금지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을 철폐했고 시장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금융규제를 계속 없앴다. 내부 통제와 위험관리가 되지 않는 금융기관들은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불투명한 파생상품을 개발해 차입과 대출을 늘렸다.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카지노 자본주의’가 팽배했다. 87년부터 18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정책결정자들은 능력을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저금리를 너무 오랫동안 유지해 자산시장의 과열을 방치했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대출을 갚지 못하는 가계가 속출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를 시작으로 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고 전 세계로 금융위기가 파급됐다.


반면에 97년 동아시아의 경험은 오히려 정부의 너무 강한 규제와 간섭이 위기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개입해 자금을 원하는 산업에 집중시키는 것은 경제 발전 초기에는 성과가 있으나 결국 시장의 왜곡과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책의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정부는 복잡한 경제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이 없고 정책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당시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관치금융이 횡행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과도한 금융 개입과 관행적인 대출이 이루어지는 ‘정실자본주의’에서 부실 대출이 늘어난 것이 97년 위기의 한 원인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맹목적인 시장우선주의와 관치금융 모두 금융 발전을 저해한다.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유지하면서도 금융산업의 발전을 도와주는 현명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최근 안심전환대출이 큰 인기를 끌었다. 출시 나흘 만에 연간 한도 20조원이 소진되고 추가로 14조원의 신청이 몰렸다. 33만 명이 넘는 채무자가 변동금리, 만기 일시 상환에서 낮은 고정금리와 매달 원금 상환으로 채무를 개선했다. 물론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자인 서민들을 배제한 것이 형평에 맞느냐는 것과 이 정도 대책으로는 가계부채 총량이 계속 늘어나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궁극적으로 경기 활성화로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면 원금 상환도 어려워지고 가계부채 문제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어쨌든 안심전환대출은 기존 대출의 구조를 바꿔 가계 부채의 위험을 줄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안심전환대출의 성공이 한편으로 불편한 것은 금융기관들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안심전환대출로 은행권은 이자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안심전환대출 채권을 주택금융공사에 매각하고 그 재원으로 주택저당증권을 의무로 사들여 1년간 보유해야만 한다. 앞으로 금리 변화에 따라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금융당국이 보완할 것이라고 하지만 취급 은행들과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판매 방식, 규모, 시기, 매각 자산 운용을 미리 논의할 수도 있었다.

 
금융기관들이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관행은 문제가 있다. 적절한 규제와 감독의 범위를 넘어서서 과도하게 정부가 종종 개입한다. 심지어 금융과는 무관한 정부 시책에 금융권이 일사불란하게 동원되기도 한다. 이를 막기에는 금융기관들의 소유·지배 구조가 취약하다. 민간 금융회사에 낙하산 인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실력보다 줄서기로 출세하고 외부의 눈치를 보면서 행동하는 조직은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신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합리적으로 규제를 완화·개선하고 금융사들이 자율적으로 책임을 지는 시장 구조를 만들겠다”고 했다. 금융의 소유·지배 구조와 잘못된 관행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한국 금융산업이 자생적으로 발전하고 경쟁력이 높아지도록 제대로 된 개혁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556501&ct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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