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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 가한 전방위 압박으로 북핵 다루라천영우 | 2015.04.11 | N0.30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핵무기도 없이 협상 성공해 경제제재 풀어버린 이란
북한은 핵 실체도 공개안해… 구체적인 협상 불가능
한반도 비핵화 방안은 외교수단밖에 없어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이란과 세계 6대 강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 간 핵 협상이 이달 2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핵 문제의 근본 해결이 아니라 핵개발 능력을 한시적으로 제한하는 데 그친 합의라는 점에서 논란이 많고 이스라엘 등의 반발도 거세다.


합의의 핵심은 향후 10년간 이란이 가동할 농축시설의 규모를 원심분리기 1만9000개에서 5060개로 감축하여 핵무기 제조에 걸리는 시간을 3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린 것이다. 이란이 합의를 파기하고 핵무기 개발을 강행해도 제재와 군사적 수단으로 이를 저지할 시간을 9개월 번 것이다. 미국은 이란의 핵개발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최선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이란으로서는 당장 경제의 숨통을 막는 가혹한 제재를 풀고 비록 규모는 축소됐어도 농축시설을 가동할 권리를 공인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장차 핵무기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핵개발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면 농축시설 규모를 양보한 대가로 농축 권리를 인정받은 것이므로 잃을 것이 없다. 이미 건설한 농축시설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이란이 농축 효율을 높일 가동 기술을 터득하고 고성능 신형 원심분리기 연구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후일을 기약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협상의 진정한 승자는 이란이다.


이란이 6강을 상대로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협상전술에서 압도했을 뿐 아니라 합의에 조급한 미국의 약점을 절묘하게 이용한 덕분이다. 당장 핵무기를 개발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교묘히 조장해 불량 원심분리기에 터무니없는 값을 붙이는 방법으로 마치 큰 양보를 한 것처럼 보이면서 실속을 챙긴 것이다. 바자의 카펫 상인들이 사용하는 전형적 수법에 6강의 외교 수장들이 어이없이 당한 것이다.


이란 핵협상 타결을 계기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으나 이란과 북한은 너무 다르다. 첫째,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한 적이 없다. 농축과 재처리 프로그램을 평화적으로만 이용할 것이라는 이란의 공약을 믿어주는 나라가 없어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평화적 목적으로 건설된 농축과 재처리 시설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수 있으니 해당 국가의 의도를 신뢰할지는 국제적 평판에 달려 있다. 이란의 경우 핵 프로그램의 평화적 성격만 지속적으로 검정할 수 있다면 이를 금지할 국제법적 근거가 없고 6강도 전면 폐기를 요구할 명분이 없다. 핵실험을 세 번이나 감행한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라는 특별국제법에 따라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할 의무를 지고 있다.


둘째, 국제사회가 핵 문제 해결에 보여준 의지와 집중력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란에 대해서는 제재의 범위와 수위에서 핵과 무관한 석유, 가스, 금융, 해운, 건설 등 경제의 명줄이 걸린 모든 분야에 걸쳐 무자비한 전 방위 제재를 가함으로써 더이상 버티기 어려운 수준의 타격을 주었다. 미 의회는 심지어 이란과 거래하는 동맹국 기업까지 제재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도 불사했다. 이에 반해 북한에 대한 제재는 무기와 사치품에 국한된 솜방망이에 불과하니 제재 해제 카드도 레버리지가 되기 어렵다. 한미 양국이 정책의 일관성과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도 실패했다.


셋째, 협상이 실패할 경우 대안의 차이다. 외교적 해결보다 대안이 압도적으로 불리해야 외교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외교적 해결이 실패할 경우 언제든 이란 핵 시설을 파괴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군사적 옵션은 이란의 핵무장을 2, 3년 지연시키는 대신 핵무장의 명분을 제공하는 치명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고강도 제재와 더불어 협상의 동력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군사적 옵션을 배제해 안심하고 핵무장을 할 길을 열어주고 외교적 해결의 여지를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끝으로 핵 프로그램의 투명성에서 이란은 그 전모가 이미 알려진 데 반해 북한은 아직도 농축 프로그램을 숨기고 있다. 핵 프로그램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합의가 아무 소용이 없다.


현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단은 외교뿐이다. 외교가 성과를 거두려면 북한 지도부가 비핵화를 선택하도록 북한의 전략적 계산 공식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이란에 가한 수준의 전 방위 고강도 제재 없이는 북한의 이해관계의 구조를 바꿀 수 없고 그런 상황에서 6자회담을 재개하더라도 진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50409/70600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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