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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은 공짜 점심이 아니다이종화 | 2015.03.23 | N0.22

이종화 고려대 교수·경제학과


서부 개척 시대에 미국에는 술을 주문하면 점심은 덤으로 주는 술집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공짜 점심이었다. 그런데 술값이 비쌀 뿐 아니라 음식이 짜서 술을 계속 주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얼핏 보면 공짜 점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것에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유래했다. 당장은 공짜라도 미래에 대가를 치르는 경우를 언급할 때 쓴다.


몇 주 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통일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반도 통일은 공짜 점심이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독일 훔볼트 대학의 마이클 버다 교수는 독일 통일 후 25년 동안 동서독 주민 모두가 많은 혜택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비용을 지불했다고 했다. 한국 참가자들은 우리도 심각하게 통일 비용을 걱정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 어느 정도 기금을 모아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려웠다. 우리 남북협력기금은 독일이 통일 후 15년간 투입한 1조4000억 유로 이상의 금액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캐서린 문 박사는 남북한 통일을 결혼 잔치에 비유하면서 한국 정부는 통일 대박론으로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잔치 비용은 마련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신부가 될 북한과는 아직 맞선도 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통일준비위원회의 민간 부위원장이 최근 남북한 합의에 의한 통일뿐 아니라 흡수통일을 준비한다고 했다가 말을 황급히 주워 담은 것은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앞으로 결혼식까지는 갈 길이 먼데 상대방 집안이 망하면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북한이 경제 개혁을 하고 남북한 간에 군사 대립을 해소하고 인적 교류와 경제 교류를 계속해 간다면 점진적 합의를 거쳐 우리가 바라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평화 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통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올 수도 있다. 독일에서도 그렇게 갑자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적었다. 

 
앞으로 남북 대화 촉진, 이산가족 상봉, 민간 교류 확대, 개성공단과 나진·하산사업과 같은 경제 협력 확대 등 남북한 통합을 위한 일들을 이번 정부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통일이 닥쳐올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통일이 오더라도 우리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비용 부담을 크게 늘릴 것이다. 공짜 점심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통일 비용을 준비해 가야 한다.

 
첫째, 통일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미리 연구해야 한다. 통일독일은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4~5%를 통일 비용으로 지출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조달했다. 통일 혜택을 장기에 걸쳐 미래 세대가 누릴 것이라면 비용의 많은 부분을 미래 세대가 부담하는 것이 옳다. 국제 이자율이 낮을 때 30년 후 원금을 갚는 공채를 국내외에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독일의 경우 처음에 동독 노동자들의 임금을 무리하게 올리고 사회보장제도를 대폭 확대하면서 통일 비용이 너무 늘어났다. 통일 후 어떤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둘째,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 이념 간, 소득계층 간 갈등이 너무 첨예해 우리 사회가 통일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지 의문이다. 지금도 항상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극단의 그룹들이 있어 화합이 어려운데 통일 이후는 더 걱정이다. 3만 명 탈북자를 제대로 껴안지 못한다는 비판도 많다. 한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연습을 미리 잘해둬야 통일 이후 2500만 북한 주민과의 사회 통합 비용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남북 예멘은 1990년 정부 간 합의로 통일을 했지만 정치·사회 갈등과 경제 혼란으로 94년 내전을 겪고 지금 다시 분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진정한 통합을 위한 노력 없이는 통일 후에도 갈등이 지속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다.

 
셋째, 국제 관계가 중요하다. 남북한 관계가 좋아진다고 미국·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지가 자동으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통일 과정에서 주변국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지지를 유도하는 통일외교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 북한 개발에 외국과 국제경제기구의 대규모 원조, 차관이 필요할 것을 고려하면 국제 관계가 통일 비용 조달에도 중요하다.

 
광복과 분단 이후 70년이 흘렀다. 일제강점기에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광복을 염원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통일도 결국 올 것이다. 맞이할 큰 잔치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치를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395293&ct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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