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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업무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김명식 | 2015.02.03 | N0.12

김명식/대구가톨릭대 교수·경찰행정학과


연초 공직사회 행사에 매달려 비효율, 수십 년 된 관행 ‘업무보고’ 폐지해야 
  
OECD 회원국은 연차보고서 의무화, 국가`공공기관`지자체도 법제화 필요
연말연시에 공직자들은 유난히 바쁘다. 회계연도 개시 전까지는 국회나 지방의회로부터 예산안 심의를 받아야 하고, 새해가 되면 또 연간 업무 계획을 대통령이나 단체장 등에게 보고해야 한다. 올해도 중앙정부의 합동 업무보고회가 지난달 끝났다. 이 보고회는 정부의 업무계획을 제시하고 관련 사업을 점검`조정하는 기회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 그러나 보고 내용의 대부분은 전년도에 올 예산안을 편성할 때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된 것이므로 중복된 면이 없지 않다.


연두 업무보고회는 과거 중앙정부가 경제`사회개발 계획을 수립하여 주도적으로 추진하던 시절에는 필수적이었다. 정부라는 무대 위치가 국민의 객석보다 높거나 비슷했던 정부1.0과 정부2.0 시절에, 국정 책임자로 정부를 진두지휘하는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받으며 장관들을 훈시하는 장면은 국가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고 정부의 신뢰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진입하며 객석이 무대보다 높아진 정부3.0 시대에는 정부가 국민을 선도할 일이 많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정부는 민간 부문의 역량을 저해하는 걸림돌을 제거하며, 각 부처는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국가안보, 공공질서, 시장경제, 사회복지 등 국가의 본질적 사명을 실천할 방법을 찾아 소관 법령에 맞게 추진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그대로 다 집행하기는 어렵다. 현재 각 부처 홈페이지에는 연도별 업무(계획) 보고서만 공개되어 있고, 그 계획들의 추진 여부에 대한 피드백 자료는 찾을 수 없다. 또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기면 당초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작년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는 이를 잘 보여줬다. 거의 모든 기관이 사고 수습에 동원되다시피 했다. 어떤 기관은 현판을 내려야 했고 사고로 물러난 장관도 있으며 몇 달간 사고대책본부로 출근한 장관도 있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작성한 연두 업무보고서는 일회용 행사자료에 그치고 말았다.


수십 년 관행으로 행해진 연두 업무보고회를 폐지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대통령은 국무회의 의장이므로 최소한 한 달에 두 번 이상 장관들을 만난다. 원하면 언제든지 각종 현안을 보고받고 지시할 수 있으며,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국무총리에게 명하여 방침을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직사회 전체를 행사 준비에 직간접으로 매달리게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행하는 시정 업무보고회도 마찬가지다. 굳이 별도의 보고회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따라서 이제는 무엇을 추진하겠다고 방침을 보고하는 행사로서의 업무계획서보다는, 이런 일을 실제로 수행했다고 결과를 정리하는 연차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현재 정부기관 중 연차보고서를 작성할 법적 의무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에만 부여되어 있다. 이 밖에 중앙과 지방조직의 기본규범인 ‘정부조직법’이나 ‘지방자치법’ 등에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그러나 많은 OECD 회원국은 모든 행정기관에 연차보고서(annual report) 작성 의무를 법률로 정하고 있다. 외국 정부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각 기관의 일반현황과 함께 회계연도 중 수행한 중요 사업을 사진, 통계 등을 활용하여 설명한 연차보고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는 정부의 수반과 국회, 감사원 등에 제출하는 대국민 성과보고서이다.


우리나라도 그간 일부 기관에서 통계연보나 정책백서 같은 자료집을 발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임의로 만들다 보니 일관성과 지속성이 없어 활용성과 정책정보로서의 가치가 미흡하였다. 그래서 앞으로는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업무(계획)보고서가 아닌 업무(성과)보고서를 작성하도록 법제화하고, 체제와 형식도 정비하면 좋겠다. 이미 운영 중인 행정기관이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화려한 수식어가 동원된 업무보고서보다 충실하게 작성된 연차보고서는, 일차적으로 국민들에게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사용되었는지를 밝히고 정부 조직을 개편할 때 객관적 판단기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후손들의 국가경영에 참고할 중요한 역사적 기록물이 될 것이다.


<매일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307&yy=2015#axzz3bmE5UN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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