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재판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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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철저히 무시당한 변호인의 객관적 증거들강훈 | 2023.01.14 | N0.22
삼성 뇌물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MB와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사이의 '삼성 자금지원'에 대한 의사합치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이학수는 MB는 물론이고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도 직접 만나 삼성 자금지원 사안을 논의한 적이 없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단지 “MB를 위해 일을 하니 삼성에서 돈을 대달라”는 에이킨검프 변호사 김석한의 말만 믿고 에이킨검프에 돈을 송금했다는 것이다. 결국 의사합치 사실을 입증할 유일한 증거는 김백준 전 기획관의 진술뿐인 것이다.

김백준은 ▲2008년 3~4월께 김석한이 청와대를 찾아와 함께 MB를 접견했고 ▲그 자리에서 김석한이 MB에게 다스 소송비용 등에 대한 이학수의 삼성 자금지원 의사를 보고했으며 ▲MB가 밝은 미소로 삼성의 자금지원을 승인했다고 진술했다.


▲ 2018년 2월 20일 김백준이 검찰에서 진술한 진술조서의 일부.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김백준의 진술을 근거로, MB가 2008년 3~4월에 삼성의 자금지원 사실을 인지해 이학수와 의사합치가 이뤄졌고, 따라서 2008년 4월 이후부터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지급한 돈이 MB에 대한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변호인단으로서는 황당한 판결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단은 ‘2008년 3~4월 청와대를 방문한 김석한이 MB를 만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이미 입증했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관에서 받은 청와대 출입기록을 살펴보면 김석한은 그 기간 청와대를 두 차례 방문했다. 3월12일과 4월8일인데, 두 날짜 모두 김석한이 청와대를 방문한 시각에 MB가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 접견이 불가능했다.

먼저 3월12일 김석한이 청와대를 방문한 시간은 11시58분부터 12시12분까지다. 그런데 이 시간 MB는 청와대를 방문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아버지 부시)을 만나 오찬 중이었다. 4월8일 김석한이 청와대를 방문한 시간은 11시5분부터 11시57분까지다. 이 시간에 MB는 전북 정읍시청을 방문하고 있었다. 당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인해 피해지역인 정읍시를 시찰한 것이다.


▲ 김석한이 청와대를 방문했다고 주장한 시각의 MB 일정.

이처럼 객관적인 물적증거를 통해 김백준의 진술이 허위임을 밝혔음에도 1심 재판부는 김백준의 허위진술을 인용해 MB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검찰이 제시한 수사기록은 물론이고 변호인단이 제출한 의견서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내린 판결이었다.

항소심에서 변호인단은 위의 자료 외에도 김백준의 진술이 허위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를 새롭게 제시했다. 다스 압수수색 과정에서 검찰이 확보하여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다스에서 작성한 서류다.

'전언통신 내용정리 보고'라는 제목의 이 서류는 다스 직원인 홍ㅇㅇ 대리가 2009년 9월29일 김석한과 통화한 뒤, 통화 내용을 윗사람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녹취록이다.

녹취록을 보면 홍 대리는 “김백준 총무비서관도 에이킨검프가 왜 수임료를 청구하지 않는지 모르고 있고, 또 이 점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김석한에게 질문한다. 그러자 김석한은 “김 비서관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 이유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변한다.

김백준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처럼 2008년 3~4월께 김석한과 함께 MB에게 다스 소송비용을 삼성이 대납한다는 보고했다면, 그보다 1년 반 뒤인 2009년 9월에 에이킨검프가 다스에 소송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이유를 모를 리 없다.

즉 '전언통신 내용정리 보고' 서류는 김백준의 진술이 명백한 허위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항소심에서 변호인단은 김백준의 진술이 허위이며, 따라서 MB와 이학수 간 삼성 뇌물에 대한 의사합치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입증했다.


▲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전언통신 내용 중 일부.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항소심 재판부는 MB가 늦어도 2008년 4월께 삼성그룹 측에서 제공하는 뇌물수수에 관한 인식과 승낙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그렇게 판단한 근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취지로 설명했다.

▲삼성의 자금지원 의사를 전달하는 데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어서 MB와 김석한의 면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고 ▲김석한이 청와대 방문 기록이 남지 않는 방문을 하였을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MB와 김석한이 직접 면담하지 않았더라도 김백준이 김석한으로부터 들은 말을 MB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먼저 2008년 4월8일에는 MB가 오전에 전북 정읍시청에 내려갔다 오후에 청와대로 돌아왔으니 면담 가능성은 전혀 없다. 따라서 항소심 재판부가 말한 면담 가능성은 김석한이 14분간 청와대를 방문한 2008년 3월12일을 말하는 것으로, 14분이면 보고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청와대는 문만 두드리면 주인을 만나는 일반 가정집이 아니다. 청와대 출입문인 연풍문에서 출입 점검을 하고 대통령이 있는 본관까지 가는 데 10분 정도 소요된다. 다시 돌아오는 시간 10분을 계산하면 왕복 20분이 소요된다. 14분간 대통령을 접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MB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오찬 중이었다. 오찬 중인 대통령을 불러내 면담하는 것은 의전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김석한이 방문기록이 남지 않은 방문을 할 가능성이나, 김백준이 김석한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MB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란 말 그대로 ‘가능성’이다. 검찰이 제시한 그 어떤 자료에도 그런 가능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

우리나라 형법은 '자유심증주의'를 택하고 있지만, 이는 적법한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긴다는 의미다. 증거도 없는 가능성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나라 헌법과 형법이 명시한 증거주의, 무죄 추정의 원칙을 위배한 ‘사법농단’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항소심 재판부는 변호인단이 항소심에서 주장한 다스의 '전언통신 내용정리 보고'에 대해 판결문에서 그 어떤 언급도 없었다. 말 그대로 정치재판에서 이미 결론을 내놓고 설명할 수 없는 증거는 무시한 채 반헌법적인 위법한 판결을 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이 같은 항소심 판결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 없다고 판결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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