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김재정이 비자금을 가져다가 어디에 썼는지 일일이 그 내역을 알 수 있는 방도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2018년 3월 1일 서울중앙지검 검사실, “김재정에게 전달된 비자금이 MB가 사용한 것이냐”고 묻는 검사의 질문에 다스 전 사장 김성우가 이 같이 대답했다. 김성우의 진술은 다스 전 전무 권승호의 진술과 일치했다.
권승호 역시 앞서 2018년 1월 21일 검찰 조사에서 “다스 법인자금이 MB에게 전달된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 부분은 제가 직접적으로 아는 사실이 없다”고 대답했다. 두 사람의 이 같은 진술은 번복되지 않고 끝까지 유지됐다.
▲ 2018년 3월 1일 다스 전 사장 김성우의 검찰 진술과 그해 1월 21일 다스 전 전무 권승호의 검찰 진술은 일치한다
다스 비자금 횡령 혐의와 관련해 객관적 물적 증거로 밝혀진 사실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8년 동안 총 242억원의 다스 비자금이 김재정에게 전달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돈이 MB에게 전달됐다고 보고 수사과정에서 김재정과 MB, 그리고 주변인들의 계좌를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김재정에게 전달된 다스 비자금이 MB에게 흘러들어간 증거는 찾지 못했다. 다만, MB의 선거캠프에서 선거자금을 담당했던 김희중으로부터 “10년 동안 선거자금 10억원 정도를 김재정으로부터 전달받았다”는 요지의 진술을 확보했을 뿐이다.
앞서 글에서 언급했듯이 김재정은 당시 MB의 강남 건물 3채를 관리하고 있었다. 이 건물들의 임대료 수익만 매년 12억원 정도가 발생했다. 따라서 10년 동안 김희중에게 전달된 10억원은 다스 비자금이라기보다는 김재정이 MB 건물을 관리하며 받은 임대료 수익 중 일부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처럼 김재정에게 흘러들어간 다스 비자금이 MB에게 전달됐거나 MB를 위해 쓰였다는 증거는 객관적 물증은 물론이고 진술 증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돈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쓰였을까? 이를 유추할 수 있는 정황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수사기록에 존재한다.
다스에서 김성우를 통해 매년 약 30억원씩의 비자금을 수령하던 김재정은, 2003년 10월경 부하직원 이영배를 대표이사로 내세워 '금강'이라는 자동차 부품업체를 설립했다. 그런데 이후부터 다스에서 조성되어 김재정에게 올라가던 비자금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2005년엔 10억원으로 줄었고, 이후에는 더 이상 비자금이 조성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성우는 검찰조사에서 “다스로부터 비자금을 수령하던 MB가, 금강을 설립한 후에는 다스 대신 금강으로부터 비자금을 수령했다”고 진술했다.
▲ 다스 전 사장 김성우가 2018년 2월 9일 검찰 조사에서 ‘MB 비자금’ 관련 진술한 내용. 다스 비자금 조성이 중단된 시기와 ‘김재정 회사’ 금강 비자금 조성 시기가 일치했다.
검찰은 이 같은 김성우의 진술을 토대로 금강을 압수수색했다. 그 결과 금강에서도 매년 수십억 원의 비자금이 조성돼 김재정에게 전달된 사실을 발견했다.
비자금 전달 구조도 다스와 같았다. 다스 비자금이 다스 사장 김성우를 통해 조성돼 김재정에게 전달된 것처럼, 금강 비자금 역시 금강 사장 이영배를 통해 김재정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리고 김성우의 진술처럼 다스 비자금 조성이 중단되는 시기와 금강 비자금 조성이 시작되는 시기가 일치했다. 회사만 바뀌었을 뿐 연속선상에 일어난 동일한 사건이었다.
검찰은 이 돈 역시 MB가 횡령한 것으로 보고 관련자들의 진술을 꿰맞춰 사건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금강 임직원 등 관련자들을 불러 그럴듯한 추측성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객관적 물증이 발견되면서 검찰의 금강 비자금 수사는 난관에 봉착했다.
김재정 자택을 압수수색한 결과, 금강에서 건네받은 비자금을 김재정의 처 권영미가 모두 사용한 내역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비자금 조성내역과 영수증 등 너무도 명확한 객관적 증거로 인해, 검찰은 더 이상 금강 비자금을 MB에게 연결시킬 수 없었다.
더군다나 권영미는 본인이 사용한 비자금에 대해 “비자금 수령이 김재정이 살아 있을 때부터 계속되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즉 그 말은 다스 비자금 역시 MB에게 전달하지 않고 김재정 본인이 사용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합당했다.
▲ 김재정씨의 부인 권영미가 2018년 2월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김재정이 수령한 다스 비자금이 MB에게 전달된 사실을 입증할 물적증거나 진술증거는 없다. 또한 다스 비자금이 중단됨과 동시에 새롭게 조성돼 김재정에게 전달된, 즉 다스 비자금과 연속선상에 있는 금강 비자금은 김재정이 모두 사용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더군다나 다스와 금강의 비자금의 조성 방식이나 전달 구조는 같았다.
결국 금강 비자금을 김재정이 모두 사용했다면, 다스 비자금 역시 MB에게 전달되지 않고 김재정이 사용했다는 의미다. 이처럼 금강 비자금이 MB에게 다스 비자금 횡령 혐의를 씌우는데 문제가 되자, 검찰은 즉시 금강 비자금 수사는 덮어버렸다. 그리고 다스 비자금 횡령 혐의만을 기소했다.
사법부는 MB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약 242억원의 다스 자금을 횡령했다고 판결했다. 사법부의 판단 근거는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먼저 사법부는 김성우·권승호가 허위진술을 할 이유나 동기가 없고, 매년 MB에게 경영보고를 할 때 '조정금액'이란 항목을 통해 MB에게 비자금 조성 액수가 보고됐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결이 왜 황당한지는 앞서 글에서 살펴봤다. 요약하면 공소시효가 남은 자신들의 횡령 혐의로 인해 김성우·권승호에게는 검찰이 원하는 허위진술을 하고 면죄부를 받을 동기가 명확했다. 그리고 경영보고 문건을 작성한 다스 경리팀장 채동영은 '조정금액'이 비자금 조성 액수가 아니라고 검찰에서 진술하고 언론 인터뷰까지 했다.
또한 사법부는 “다스 비자금을 받은 후, 김재정은 수표나 어음을 정OO 등 부하직원들을 시켜 현금화 작업을 했다”며 “김재정 본인이 쓸 돈이라면 번거롭게 돈세탁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이 돈은 MB에게 간 것”이라고 판단했다.
도대체 이런 판단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 다스 비자금을 김재정이 횡령했더라도 그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따라서 김재정 본인이 다스 비자금을 횡령했어도 범죄사실을 숨기기 위해 돈세탁을 할 필요성 있었다.
게다가 김재정이 생전에 수표 사용을 꺼려하고 현금 사용을 고집했다는 진술과 증언도 존재했다. 김재정의 처 권영미는 검찰조사에서 “젊어서부터 남편한테 배운 것이 수표는 자금추적이 되니까 현금으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것”이라며 “김재정 부하직원 정OO이 현금으로 바꾸어줬다”고 진술했다.
▲ 권영미 씨의 2018년 2월 검찰 진술 내용과 2019년 1월 법정 증인신문 내용.
사법부는 이처럼 명확한 진술과 증언은 외면한 채, “김재정이 MB에게 줄 돈이 아니라면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소설 같은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쓰면서 본인들이 생각해도 근거가 부실하다고 생각했는지 한마디 말을 더 붙였다. 그것은 “김재정에게 전달된 비자금이 어디에 사용하였는지를 따질 필요 없이 MB가 김성우·권승호에게 비자금 조성을 지시할 때 이미 횡령죄는 성립한다”는 내용이다.
앞서 글에서 살펴봤지만 김성우·권승호가 주장하는 MB의 비자금 조성 지시는 “이익이 많이 나면 현대자동차가 단가를 조정할 것이니 이익을 줄이라”는 내용이다. 백번을 양보해 두 사람의 주장처럼 MB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비자금 조성 지시’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이익을 줄인다는 의미가 꼭 횡령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다스에서는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는 재고자산 분식도 행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판결은 재산범죄의 핵심이 그 범행의 대상목적인 재산의 취득에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