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재판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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⑱ 이병모 체포, 검찰-채널A 함정수사 의혹강훈 | 2023.01.13 | N0.8
2018년 2월 9일, 채널A 기자 한 명이 영포빌딩을 찾아왔다. 영포빌딩 1층에는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기자는 경비원에게 자신의 신원을 밝힌 후 말했다.

“며칠 전 검찰이 영포빌딩을 압수수색을 할 때, 취재를 왔다가 지하주차장에 깜빡하고 물건을 두고 갔습니다. 그 물건을 꼭 찾아야 하니 함께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경비원은 기자의 요청에 따라 함께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다. 지하주차장 한 구석에는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후 남기고 간 서류가 박스에 담겨 쌓여 있었다. 검찰이 MB의 혐의를 찾기 위해 20여 시간이나 꼼꼼히 뒤진 후 관련이 없는 서류들을 두고 간 것이었다.

기자는 자신의 물건을 찾을 생각을 않고 서류박스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장부 하나를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집어 들고는 경비원에게 말했다.

“이 장부는 외부로 나가면 안 되는 중요한 장부인 것 같은데요? 여기에 방치되면 안 되니 책임자에게 전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경비원은 기자에게 “그냥 있던 자리에 장부를 두라”고 하고 기자를 돌려보냈다. 기자가 돌아간 뒤 경비원은 그 장부를 청계재단 사무국장 이병모에게 전달했다. 당시 이병모는 MB사건과 관련해 7차례나 검찰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장부를 살펴보던 이병모는 겁에 질렸다. 5~6쪽 분량의 내용이 적힌 장부 속에 자신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모는 앞뒤 생각 없이 장부를 세절기에 넣어 파쇄 해 버렸다. 사흘 뒤 서울중앙지검 검사 한 명이 이병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영포빌딩 지하주차장에 와 있으니 내려와 보세요.”

황급히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보니 검사는 수사관 한 명과 함께 서류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이병모가 내려오자 검사는 담배를 권한 뒤, 모 부장검사와 몇 차례 통화를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병모에게 짜증을 냈다.

“채널A 기자가 발견했다는 장부와 서류는 어디 갔어요!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이 국장에게 전달했다고 하던데!”

이병모는 검사의 계속된 질책에 못 이겨 결국 ‘문서를 파기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검사는 이병모를 긴급체포해 수갑을 채우고 중앙지검으로 압송했다. 이틀 뒤 구속영장이 발부돼 이병모는 구속수사를 받게 됐다. 검찰로서는 이병모를 별건 구속해 원하는 진술을 얻어낼 기회를 잡은 것이다.

구속된 지 한 달 동안 22차례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으며 이병모의 몸무게는 두 달 새 10㎏이나 줄었다. 아침에 검찰청으로 불려나갔다가 자정이 넘어 구치소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면서, 변호사를 접견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가족 면회도 되지 않았다. 수면부족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멀쩡하던 이빨도 상했다. 극심한 치통을 호소했지만 검찰은 치과치료를 받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원하는 진술을 할 수도 없었고 검찰조서를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었다.


▲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의 증인신문 내용.

심지어 이병모는 검찰수사 과정에서 검사로부터 ‘답정너’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답정너’란 ‘답은 정해져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의미의 줄임말이다. 검찰이 답을 정해놓고 참고인을 압박해 거짓진술을 강요하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이병모에 대한 검찰의 압박은 증인신문에서도 있었다. 변호인 신문 이후 잠시 휴식시간에 증인석에서 자리를 뜨는 이병모에게, 한 검사가 다가와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는 말을 했다. 엄청난 압박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중 이병모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파쇄한 장부의 사본을 검찰이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병모는 모종의 음모가 있다고 보고 접견을 온 변호인을 통해 그 사실을 청계재단 송정호 이사장에게 알렸다.

송정호 이사장은 영포빌딩에 설치된 CCTV 녹화 파일을 조사했다. 그랬더니 채널A 기자가 2018년 2월 6일과 8일 두 차례 지하주차장을 몰래 방문한 사실이 확인됐다. 송정호 이사장은 청계재단 이름으로 해당 기자를 주거침입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채널A 기자의 주거침입과 관련된 검찰 수사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 기자의 검찰진술에 의하면 6일 영포빌딩 지하주차장을 몰래 들어와 서류더미를 뒤져 문제의 장부와 A4용지 3~40장 분량의 서류를 절취했다.

기자는 자신이 절취한 장부와 서류의 사본을 만들어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부장검사와 어떤 모의를 했는지 모르지만, 이틀 뒤 기자는 다시 영포빌딩 지하주차장에 몰래 들어가 자신이 절취한 장부와 서류를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놨다.

그리곤 다음날, 영포빌딩을 찾아와 경비원에게 잃어버린 물건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지하주차장에 내려가자고 한 것이다. MB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는 이병모를 구속시켜, 별건 강압수사를 통해 원하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한 ‘검찰의 함정수사’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 채널A 기자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 중 일부 내용.

청계재단 측 변호인은 채널A 기자의 검찰진술도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청계재단 지하주차장 서류는 검찰이 20시간에 걸쳐 이 잡듯이 뒤진 끝에, MB와 관련이 없다고 판단해 두고 간 것이다. 그런데 그 기자가 도대체 무슨 수로 그 속에서 문제의 장부를 찾았냐는 것이다.

그 장부는 검찰수사 과정에서 MB의 어떤 혐의도 입증하지 못하는 증거였다. 그러나 이병모에게는 충분히 압박감을 줘서 문서를 파기시킬 동기를 제공시킬만한 내용이었다. 즉 ‘그 장부는 채널A 기자가 영포빌딩 지하주차장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검찰이 압수한 서류 중 적절한 서류를 골라 기자에게 건넨 후, 이병모를 구속시키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게 청계재단 변호인이 제기한 의혹의 요지다.

2019년 3월 20일 항소심 공판에서 이병모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었다. 필자는 이병모에게 관련의혹에 대해 물었다.

“증인이나 증인의 변호인은 ‘검찰이 장부를 미리 확보해 놓고 기자를 통해 증거인멸을 유도한 것이 아니냐’고 검찰에 항의를 했습니까? 증인은 1심에서 증거인멸죄가 유죄 판정되었지요? 증인 말대로라면 함정수사의 의혹이 있는데 왜 항소하지 않았나요?”

그러자 검사 측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변호인 신문 도중 검사 한 명이 일어나 재판장에게 이야기했다.

“재판장님. 증인이 함정수사 의혹을 인정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변호인이 증인이 함정수사를 인정했다고 전제하고 묻고 있는데…”

변호인의 말꼬투리를 잡아 이병모 구속에 대한 함정수사 의혹 신문을 방해하려는 의도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재판장도 “그런 질문은 나중에 하라”며 검사를 가로막았다. 그러자 검사가 다시 문제제기를 하면서 검사와 재판장 간의 말싸움이라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지난번 재판에서 재판장님은 저희가 잘못된 전제로 질문을 했다며 제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재판에서는 변호인이 잘못된 전제로 질문하는데 제지하지 않으셔서 그 부분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지금 누구한테 지적을 한 겁니까? 나한테 한 겁니까? 내가 판사 생활을 십년을 넘게 했는데 재판 도중 검사로부터 지적을 받은 것은 처음인데요.”

“재판장님 진행과 관련돼서 이의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재판장은 검사를 노려본 후 변호인을 향해 “그대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당시만 해도 필자는 재판부가 이병모 검찰진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증인신문 내용을 증거로 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병모의 법정증언으로 검찰의 가혹한 별건 구속수사가 밝혀졌고, 체포 과정에서의 함정수사 의혹도 충분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순진한 생각이었다. 항소심 판결문에는 이병모의 검찰진술만 상당부분 인정됐고, 증인신문 내용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방식으로 MB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청계재단이 채널A 기자를 고소한 사건도 검찰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청계재단이 재정신청과 재항고를 통해 대법원까지 갔지만, 대법원도 재항고를 기각시켜 버렸다. 이 문제는 정권이 바뀐 후 반드시 재조사 되어야 하는 사건이라고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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