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천안함 묘역 찾은 MB…전사자 하나하나 읊으며 눈물
“이제라도 찾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22일 오전 대전 국립현충원에 들어선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12월 사면ㆍ복권된 후 첫 외부일정으로 천안함 46용사 묘역, 연평도 포격 도발 희생자 묘역,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을 참배하면서 내놓은 소회다.
이 전 대통령이 이곳을 찾은 건 5년 만이다. 재임 중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벌어진 후 이 전 대통령은 “통일이 되는 날까지 매년 전사자 묘역을 찾겠다”고 약속하고 지켰지만 2018년 3월 수감되면서 찾을 수 없었다. 이 기간엔 이 전 대통령의 뜻을 전달받은 MB계 인사가 참배를 이어왔다.
묘비 앞에 선 이 전 대통령은 감회가 새로운 듯 전사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을 수행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A 준위는 자녀가 둘인데 아들은 선생님이고 딸은 해군 군무원이다”, “B 원사의 딸은 해군 장교가 됐다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C 중사의 어머니는 여러 번 직접 만났는데 참 훌륭하신 분이다” 등 고인과 유족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주변에 얘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이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한다. 유족이 잘 지내고 있는지 늘 챙겨달라”는 주문도 덧붙였다고 한다. 참배 중 이 전 대통령은 흐르는 눈물을 거듭 닦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자유의 전선에서 헌신한 정신을 기리며 대한민국의 국가 번영과 안보를 지키기 위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모처럼 만의 외출엔 MB계 인사도 총출동했다. 류우익ㆍ정정길 전 비서실장, 이재오(특임)ㆍ이귀남(법무부)ㆍ현인택(통일부) 전 장관,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두우ㆍ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 장다사로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이명박 정부 인사 24명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다 같이 전세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대전으로 바로 온 인사까지 합하면 30여명이 모였다.
참배 후 이들은 인근 묵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은 매년 참배 후 들르는 단골집이라고 한다.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사장은 5년 만에 온 이 전 대통령에게 “오랜만에 오셨다. 내년에도 꼭 오시라”고 말했고, 이 전 대통령은 “내년 올 때까지 꼭 건강하시라”고 답했다고 한다.
점심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앞으로 외부 일정을 많이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오 전 장관 등이 “건강을 위해서라도 바깥을 자주 다녀야 한다”고 제안하자 이 전 대통령도 “청계천은 잘 있는지, 4대강은 어떤지 한번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청계천ㆍ4대강은 각각 서울시장ㆍ대통령 재임 시절 추진한 대표 사업이다. 한 측근은 “이 전 대통령이 꾸준한 통원 치료로 건강이 많이 호전됐다”며 “청계천은 4월, 4대강은 5월쯤 가는 방향으로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 측근은 “희생 장병을 추모하는 날인 만큼 다른 얘기는 없었다”며 “특히 전직 대통령과 그 측근이 모인 자리에서 현안을 얘기하는 건 현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김기현 대표 등 여권 관계자가 찾아오는 데 대해선 이 전 대통령이 “사람이 찾아오니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